관계 그 알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시작은 언제나 나이와 사회적 지위를 기준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그 단순한 시작은 시간이라는 먹이는 먹고 성장하여 끝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존재를 만들어낸다.
형, 누나, 동생, 선배, 후배, 직상 선후배, 타부서의 동료 그리고 기타 등등
다양한 관계를 생성된 후에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실로 연결되어 살아간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3명의 늙은 노파 중의 한명이 인생이라는 실을 끊을 수 있는 가위를 들고 있는 것 처럼 지금 나의 머릿속에는 내 능력으로는 끊어버릴 수 없을 것 같은 이 질긴 실타래를 어떻게 할 것인가로 가득하기만 하다.
삶에 대한 아니 생활에 대한 안정이 여기에 있기에 고민이 크기만 하다.
끊어내 버리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이 내 안에 있고, 나 스스로 고립될 것 같아 무섭다.
그 감정과 더불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을 내 몸에 칭칭 감고, 점점 빠르게 제로를 향하는 시간이 나를 위축되게 한다.
아침 부터 아내와 함께 울며 기도해 본다. 괜찮아질거다. 그렇게 나의 생각을 바꾸며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도 이렇게 글을 남긴다.

긴 하루의 시작

정말 잘 잤다는 느낌이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정말 푹 잘잤다고 생각했다.

오전 3:35.
머리가 맑아지고, 온 몸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왜 그런지 나는 내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 뿐이다.
이제 나도 불혹의 나이로 진입했다. 하루 하루가 다르게 느껴지는 때라 그러더라.

체력은 떨어지고, 사리 판단은 더더욱 힘들어지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내 나이 20대의 고민이 40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은 그냥 생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아들이 커가고 있다. 어제는 하나남은 유치 앞니를 빼고, 해맑고 웃고 있었다. 이 녀석의 영구치가 나오면, 성장할 것이고 그리고 나는 내 영구치가 빠질 일만 남았다. 그래 그 녀석의 청춘이 나의 노년이 될 것이라고 입 버릇처럼 떠들었는데 현실은 나의 행복감과 바꾸어 버린 성장의 일부분이 되었다.

벌써 6시 7분이 지나고 있다.

오늘은 송도에 양재까지…

하루의 일정이 꽉 차있다.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뒤돌아 볼 여유도, 주위를 돌아볼 마음의 시간도 모자란 때이다.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배웠다. 새로운 문이 열렸으면 그 문 너머의 무언가가 있을지 호기심을 가져봐야 한다고 배웠다.
그 배움이 강요가 아니길 원하고, 나아가 그 호기심이 나의 발목을 잡을 장애물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결국 넘어야할 장애물이라면 기꺼이 넘어 가겠지만 그 장애물 자체가 벽이가 되어 내 앞을 막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앞으로 해야할 일들은 반납할 장비 목록과 새로운 버전의 OS 테스트와 학생들을 위한 OS 설치 뿐이다.

비 오는 날 머리에 꽃을 꽂고

그렇게 걸어다니며 내 안에 있는 광적으로 들끓어 오르는 감정을 모두 버리고 싶었다.

마치 투명한 유리병에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차 있던 것이 흔들리는 감정과 함께 구정물이 되었다가 그 요동치던 감정이 사그라지면 유리병 아래에 가라앉아 다음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일보다 관계가 중요한 사람이다. 일에 높고 낮음은 책임지는 위치가 다른 것이라 배웠고 나 또한 내 아래의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그렇게 책임지는 선배로 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었다.

나를 흔드는건 결국 내가 아니라 외부의 자극이었다.

이 투명한 유리를 자극하는 요소는 일을 핑계로 마치 하청 업체의 판견직을 대하는 동료의 행동이며 조금 높은 직책을 무기로 모든 업무를 전가하는 무책임한 상사들의 폭력이 주요 요인이다.

일에 대한 협의는 그 일의 주체가 누구인지 구분짓는 것이며 그 일을 책임지고 할 수 있는 부서나 사람에게 적절히 배분하기 위한 것인데…. 이놈의 조직은 “그냥 해!”가 더 많다.

부장이라 이사라 상무라.. 그렇다고 한다.

부장은 부장이라 안 하고, 이사는 이사라 안 한다. 상무 새끼는 부하 직원 관리는 자신의 직물하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근데 이 셋이 이미 망한 회사에서 부장으로 차장으로 과장으로 근무하던 놈들이다.

나름 자신들이 아주 큰 회사의 중요 직책을 감당했기 때문에 이런 일은 아주 잘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이사가 마우스를 납품하기 위해 고객을 찾아가는 삼류 영업 집단이다.

그래도 영업력 하나는 탁월한데 이 말은 얼굴에 철판이 두꺼워서 창피와 수치심을 모르기 때문이지 그 감정을 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그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먹고 싶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건드린다는 것 자체가 싫어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변화에 목이 마르다.

내 내면의 속사람이 원하고 있고, 겉사람 또한 그것을 정말 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다만 일과는 별개로 아침에 일찍 눈을 뜨지만 그냥 누워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즉 흥미를 잃었다는 것이다.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고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자원하는 마음이 참 큰 사람이다. 내가 자원해서 하겠다는 일에 대해서 소홀히 여겨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마음이 마치 활활 타오르던 숯불이에 어마어마한 양의 차가운 물을 한번에 뿌려서 그 불씨를 꺼버린 것과 같은 상태이다.

살아가야 한다.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다. 일을 쉬면 전기료 부터 아이의 교육비까지 모든 것이 빚이 되고 짐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 현실 너머 내 이상을 찾아가는 것이 내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I am still alive.

2020년 1월의 첫 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무엇 하나 버릴 것도 그렇다고 간직할 이유도 없는 삶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내 삶을 두루 감싸고 있었다.

그렇게 지나가 버린 2019년이었다.

정말 치열한 1년을 보냈다. 단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영역에서 그렇게 처음 걸음을 배우는 아이처럼 나는 내딛어야만 했다.

다행히 그 분은 나의 곁에서 나의 걸음을 기억하고 계셨고, 내가 앞으로 나아갈 때 마다 혹은 넘어질 때 마다 나 보다 앞서서 때로는 뒤에서 나를 붙잡아 주셨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였다. 그럼에도 나는 성장할 수 있었고, 그 성장이란 신체적 혹은 정서적 영역 안에 나는 오로지 권순길이라는 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아직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이다. 고작 100살 기준으로 아직 절반에도 못 미치는 인생이고, 누군가의 아들로 또는 남편으로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삶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오늘도 이른 새벽 부터 씻고, 출근길을 나설 뿐이다.

2020년 첫 글 부터 뭔 연민이나 아쉬움 또는 후회가 많은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시작이다.

벌써 15일이 지났지만 3개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궤도에 올랐다.

그래… 이게 다 그 분 덕분이다.
그렇게 나는 감사한 인생.. 그러니까 존재 자체가 그 분 안에서만 설명되어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고맙습니다.

선택과 집중

간 밤의 꿈 속에서 내가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결과를 미리보기로 볼 수 있었다.
그 일은 마치 지금 현실에서 내가 고민하던 것을 반영하듯이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모습으로 찾아왔다.

결론이 내려진 일에 대해서 태도와 생각을 고치기는 너무 어렵다. 그러나 아직 그 일에 대해서 어떠한 결론이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언제든지 태도와 생각 그리고 다양한 토의와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다.

대부분은 결론을 내린 사람이 일방적으로 자신과 다른 결론을 가진 사람에 대하여 그의 태도와 생각을 바꾸기를 원하거나 강요하기 쉽상이고,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관계에 대한 신뢰는 깨지고, 지시와 강요, 의지와 상관없는 일장적인 선택만 존재할 뿐이다.

요즘 내 삶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도출된 결과를 가지고 논의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나 나의 직임이 나의 신분으로 작용하여 나보다 낮은 직임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갈등은 결국 있는 그대로의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의 부재인것 같다. 그렇게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고, 그렇게 그 틀 안에서만 그 사람을 보려 한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관망하는 자세로 불필요한 감정 대립을 멈추고, 사실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것이며 집중해야 할 것이다.

20180305

간밤의 꿈을 잃어버린 나는 방황하듯 홀로 울부짖는 늑대가 되었다.

현실이 부여한 어깨의 걱정과 근심 그리고 내 배 주위로 둘러싼 염려는 결코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멈추고 싶다.

이 시계를 멈추고 싶다.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멈추지 않는 수없이 많이 조각난 짧은 찰나의 순간 모두를 부숴버리고 나는 다시 기나긴 꿈속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그러나 멈춰지지 않는다.

아주 잠깐이라도 나의 의지와 바램과 소망이라 불리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마법 같은 순간이 찾아오길 바라보지만 여전히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여전히 그 ?몽념에 갇혀 있는 것이다.

도망가고 싶다.

멈추고 싶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내게도 타인에게 넘겨준 배려와 용서 그리고 긍휼의 시선을 베푸는 손길이 필요하다는 사실 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나를 향한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일까?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부족한 것들 뿐이어서 나는 이 고통의 수레를 벗어나지 않는 것일까?

하나님의 인자하신 손길과 그분의 긍휼을 기다린 지 벌써 몇 해가 지났는지 모른다.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을 하루하루 채워가지만 내가 기대하는 것과 그분의 바램은 너무나 다른 것으로만 보인다.

나는 확실히 갈 길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그 자리에 멈춰서 은혜를 구걸하는 거지가 되어야 할지 선택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나를 둘러싼 이 두려움의 저주를 비껴갈 방법을 모르겠다.

그저 눈물로 내 안에 새겨진 저주의 상처들을 하나하나 닦아 내려갈 뿐이다. 내게 주어진 이 상황과 상처들을 모두 끌어안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인가 보다.

밤은 깊어가고 낮이 밝아 오려 한다. 다시 오지 않는 오늘이지만 지금의 나는 오늘에 대한 기대보다 오늘을 살아낼 방법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나는 살아있으면 싶다. 호흡하는 인간으로…. 그리고 시간 속으로….

20180211

눈을 뜨는 것이 무섭기만 하다.

아침은 새로운 시작이 되지 않고, 두려움의 시작이 된 지 한참은 된 것 같다.

여전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 반복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아침의 새로움이 시작이기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나 보다.

찌뿌둥한 몸을 움직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같은 시간에 일어나 일정한 형태로 반복하는 행동이나 일들을 본다.

먼저는 비타민을 마시는 것이며, 둘째는 따뜻한 차를 그러고도 잠이 깨지 않으면 진한 커피나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것이다.

잠이 덜 깬 나의 정신과는 반대로 아내와 아이는 분주하기만 하다.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기 위해 아내는 식사와 옷 그리고 가방과 필요한 것을 챙기고, 아내도 운동을 위해 여벌 옷과 수업을 위해 필요한 것을 주섬주섬 가방에 넣는다.

이 아침에 홀로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일상을 경험하는 사람이 바로 나란 존재다. 내 시간은 멈춰있다. 그것도 거의 일정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다 공복이 주는 신호 때문에 밥솥을 뒤지다 보면 어느덧 점심시간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이때부터 부족한 시간과 정서적 불안감 그리고 스스로 부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이리저리 바빠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잠깐 한숨을 돌리려 하면 아이와 아내가 돌아올 시간이다. 그리고 나의 시간 아니 그러니까 나의 일상은 거기서 멈춰버린다.

무의미하다는 것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일상이 이런 것일까?

알 수 없다. 아둘람 동굴에서 다윗도 그런 기분으로 머물렀을까? 주위에는 온통 도둑과 강도 그리고 나름대로 상처와 울분을 품은 이들을 곁에 두고 그도 이런 일상을 맞이했을까? 그저 몇 장으로 이루어진 책에는 다 나와 있지 않지만, 그 두려움을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다. 그 동굴에서 그는 무슨 꿈을 꿨을까? 어떻게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고, 그 용기를 어떤 방법으로 도둑과 강도들을 설득했을까?

과정은 잘 모르겠지만 결과를 보자면 그는 그 안에서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방법을 배웠고, 그의 능력과 실력이 되어 도둑과 강도 그리고 상처가 가득한 사람들을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데 가장 필요한 인물들로 바꾸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 되었다.

지금 내가 그 소망을 내 맘에 품고 기다리고 있다.

2018.1.30.

참을 수 없는 고통을 함께 나누며 각자의 위치에 자신의 해야 할 것을 바르게 알며, 올곧게 그 길 위에 서 있을 수 있는 관계가 있을까?

남편과 시아버지는 죽고, 이제 남은 것은 시어머니와 형님뿐인 상황에 놓은 이방 여인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한때 그녀와 남편과 시부모는 굉장히 부유한 집안의 사람이었다.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그녀의 동네로 이사를 왔고, 그녀는 두 형제 중의 막내에게 시집을 갔다.

단란하게 가족을 꾸리고 행복을 느꼈던 것도 잠시, 순식간에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 단호한 슬픔이 되어 그녀의 삶 전체를 뒤바꿔 버렸다.

시아버지를 시작으로 남편과 그의 형의 죽음을 지켜 보았고,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을 포함한 여인 셋.

그렇게 그녀들의 슬픔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어느 날 시어머니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며느리들을 앉혀 놓고, 각자의 갈 길을 가라고 권하고 있었다.

큰 형님은 자신의 길을 가기로 선택하고, 그녀 홀로 시어머니 옆에서 살며 시어머니를 따르기로 한다.

어찌 된 일인지 고향으로 돌아온 시어머니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은 하나 없었다. 소망은 그렇게 소망이란 이름으로 불릴 뿐 다른 이유나 목적 그리고 주린 배를 채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은 추수가 끝난 넓은 들판에 나아가 떨어진 이삭을 주어다가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것이 전부.

그러나 그녀는 이방인이라는 차별의 멍에를 두르고 들판에 나아가 홀로 이삭을 주우며 생활한다.

대부분의 삶이 이렇게 끝이 나지 않던가? 그리고 시어머니와 행복했다. 배부르게 먹고 즐겁게 살았다. 이런 문장이 마지막에 남으면 한 여인의 인생도 그녀와 함께 했던 시어머니의 인생도 끝이 나고 만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어머니의 먼 친척 중에 부유한 사람이 있었고,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던 그는 그녀를 위해 사람을 시켜 들판에 많은 이삭을 일부러 떨어뜨려 놓기도 하고, 그녀에게 음식과 물을 주며 빡빡한 인생에 잠시나마 쉼을 주기도 한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와 시어머니에게 오늘 일어난 일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 시어머니는 몇 가지를 지시하고 며느리인 그녀는 그 지시 사항을 따르며 지켜낸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 출가하는 그녀. 그리고 그녀의 삶 전체를 멍에로 이끌고 있던 이방인에서 이제 그녀는 한 남자의 당당한 아내로 그리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문의 기록된 여인으로 그 이름이 존재하게 된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굿룻”이란 여인의 이야기이다.

아침부터 깨어진 관계와 인생을 묵상하는데 내게 보인 의미가 바로 그녀의 삶 자체였다. 쉬운 삶은 없으며, 100% 만족이란 이름으로 꽉 채워진 인생도 없다.

그렇게 우리의 삶에는 잃어버린 부분도, 채워진 부분도 함께 존재하며 그 두 가지가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며 인생의 굴곡을 만들지 않던가?

나는 오늘 아침에도 이 글을 남기며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로 결정한다.

그 분이 아니면 내 인생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 분이기 때문에 내 삶의 어떠한 고난도 일방적인 폭력으로 기억으로 존재하지 않고, 나를 연단하기 위한 훈련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린다.

2018.1.29

얼마 전 부터 서버의 상태가 이상했다.

아니 사실 서버는 별 문제 없었다. 몇가지 해야 할 것들 때문에 이것저것 실험 중인데…

실수로  MySQL을 건드린 것이 화근이었다.

적어두었던 Root 계정의 암호는 당최 먹질 않고, 웹사이트에는 계속 접근 불가로 나오고…

그나마 타임머신으로 백업을 해 놓았던 것이 생각나 복원했더니.. 2017년 12월 28일이 마지막 백업이라 몇 개의 데이터는 살릴 수 없었다.

그걸 감사해야 한다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뭐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거의 없었는데 정상이었을 때 작동하지 않았던 PlugIn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걸 보면서 세상에 무조건 손해 볼 일은 없다는 걸 배웠다고나 할까…

태어났으니 죽는 것이고

시작했으니 끝이나야 하는 것이고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존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계라는 울타리 안에서 존재해야 하는 것이고…

불편하고, 불안하고, 두렵고, 걱정되고…

그렇지만 또 살아야 한다.

지금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오늘을 사는 것이다.

2017.10.17

그렇게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변한 것은 없고 그저 안주해 있다.

생각이 많아지기 보다는 오히려 생각하는 시간을 없애기 위해 멍한 표정으로 창문 밖이나 아보카도를 보거나 그것도 실증이 나면 밖에서 뜀박질하는 것이 일상이다.

지방과 근육양이 비율이 1:1인 이상한 비만인이 되어 가고 있다.

할 일이 산더미 같다고? 아니 오히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욕구가 산더미 같이 쌓여져 있다.

아침에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아내를 위해 커피를 내리고, 침구를 정리하고, 율이의 어린이 집 등원을 돕고,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제일 잘한다.

무엇일까?

이 허무와 공허의 뫼비우스 띠에 대해서 가르쳐 준 선생이 없다. 아니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 선,후배 또는 아내 조차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오롯이 내 안에 담아 두고 쌓아서 높이 우러러 봐야 하는 것일까?

여전히 내 인생과 아내 그리고 아들의 인생은 진행 중에 있다. 인생의 나침반이 고장 나지 않았다면 나는 정해진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것 만큼은 그것 하나만큼은 내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이 쉽지 않다는 것과 신경쓰고 고민해야 할 것 조차 나는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해야 한다. 해 봐야 한다. 넘어지거나 혹은 쓰러지더라도 그래도 가봐야 한다.

그것 만큼은 내가 제일 잘하는 거 아닌가!!!

글을 쓰는 이유.

최근 김영하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비슷한 고민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젊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다. 그 분들에게 내가 좋은 사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을 생각할 때 내 안에 그 사람에 대한 정체 불명의 형태가 있다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그 형태는 때로는 붉은 색을 담은 힘이며, 보일 듯 말듯 아주 작은 점이기도 하며, 내 생각의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의 깊이와 넓이로 나를 흔들고 자극하는 그런 형태이기도 하다.

오늘은 어떤 이유에서가 아니라 나도 그런 형태의 사람들과 관계에 지쳐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사색을 즐기거나, 좋은 장소에서 기념이 될 만한 무언가를 했다면 내게 더 유익했을텐데 나는 그 시절의 사람들에게 중독되어 있었다.

아니 사람이 그리웠고, 사람 때문에,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게 전부였던 시절인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 내가 느끼며 생각하는 것을 따라 글을 쓴다.

키보드의 둔탁한 소리 뿐만 아니라 글에 집중하는 짧은 순간만큼은 내 안의 나를 바라보며 나에게 가장 정직한 자세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이유?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자신과의 우정을 쌓아가는 시간이다.

아들에서 아버지로.

아이의 키가 자란다. 단순히 외형적인 변화가 아니라 그 안에는 아이의 정서와 생각 그리고 꿈과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6년 전 아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랬다. 새벽에 갑자기 양수가 터지고, 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깨워 짐을 꾸리도록 지시하는 아내와 아무 것도 모른체 호들갑 떨고 있는 내가 있었다.

아무 것도 몰랐다는 건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종종 그 의미를 겸양이나 혹은 그런 척하는 무형의 포장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래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

시간이 지나고 이 아이는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한다. 때론 아비가 들어줄 여유가 없고, 어미 또한 정신없어 세세히 돌보지 못해도 아이는 자라고 있었다.

장난스런 표정 뿐만 아니라 때로는 남의 자신 보다 더 아끼고 헤아리는 마음을 담은 아이.
내가 바라고 원해서 키운 것도 아닌데 아이는 아비의 걱정 보다 더 잘자라고 있다.

식당에 들어가면 가족끼리 손을 잡고 돌아가며 기도해야 하고, 잠자기 전에는 반드시 가족을 위해, 부모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기도한다.

‘엄마, 아빠 더 사랑하게 해 주시고, 우리 가족 행복하게 해 주시고,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기도하는 아이.

더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지만… 그저 지금처럼 자라길 바라는 그 욕심 하나만큼은 가져보고 싶다.

아이가 자란다. 나도 늙어간다. 내 아비도 늙어간다. 그렇게 삶은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며, 숨을 멈추는 큰 원 안에 있다.

그럼에도 그 순간. 자라는 순간에 아이의 눈을 맞추고, 아버지의 삶을 담아 보려한다.

아직 아이의 성장을 지켜 볼 이유와 의무와 책임. 무엇보다 삶이 여기에 있다.

장난꾸러기 권율
장난꾸러기 권율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 세가지.

제목이 좀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힘든 일들을 이 세가지로 구분해 보았다.

  1. 태어나는 것.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어머님의 뱃속에서 자라다 보니 10개월을 채우고 태어나야만 했다. 그렇게 때문에 가장 힘든 일이었다 말하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고, 선택할 수 없었으며, 스스로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 사는 것.
    이것 참 어렵다. 목적도 없이 태어나 살다보니 해야할 것 투성이다. 경쟁은 왜 이렇게 많이 해야 하며, 이기기 위해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탐구해야 하며 내 또래의 아이들 모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수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 보이직 않는 닭장 속에서 말이다.

  3. 죽는 것.
    이게 세번째인 이유는 언제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선택을 할 수 있다. 그것을 자살이라 부르고, 그것은 1번에 큰 의미를 주신 분들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이기에 논외로 두자. 그래도 3번이 이녀석이란 건 참 다행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가장 어려운 두 가지의 일을 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분해 놓고 보니 2번을 감당하고 있는 오늘의 하루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인생을 아직 잘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어떤 선택이 가장 최선이며 올바른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는게 사실이다.

열아홉, 스물살에 고민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 참 많은 일들을 해냈다. 건강하게 자랐고, 남들은 해 보지 못한 경험들을 해 보았고, 다른 문화와 언어 그리고 완전히 다른 시스템의 공간에서 일도 해 보았다.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음 챕터에 무슨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늘이라는 하루만 생각해 보면 괜찮은 커피를 마셨고, 아직 배는 고프지 않고, 아침 부터 아들의 재롱에 찰라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으며, 나아갈 삶을 걱정하며 다독여 주는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2번이 진행중이니 다가올 3번은 나중에 하기로 하자.

지금은 2번에 집중하자. 제일 힘든 일은 지났으니 일단 살아보자.

나는 박쥐다!

포유류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류도 아닌 어둠과 더욱 친해 그 이미지 마저 ‘흡혈’이라는 단어와 제일 잘 어울리는 존재.

“박쥐”

마치 그 존재 처럼 나도 내 삶에서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실패가 두렵다. 사실 실패보다 실패 한 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이 없다는 것이 더욱 무서울 뿐이다.

어떤 일을 하다가도 다시 안정적인 일들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나는 나를 거침없이 박쥐라고 부르게 되었다.

남들 보다 과격한 일들을 거침 없이 해 왔다. 믿고, 버려지는 상황 속에서도 내가 가진 믿음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생각 그리고 행동으로 살아왔다.

그런 내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어두운 동굴 속 습한 기운에 몸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배트맨처럼 부자나 탁월한 운동력 혹은 매력이라고는 찾을 수 없지만 그래도 살펴 보면 내 안의 박쥐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매력은 충분하다 생각한다.

누군가는 의아해 한다. 이런 류의 글을 왜 그렇게 쓰는지? 그리고 이 글이 포스팅되고 나를 걱정해 주시는 분들의 전화가 온다.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면 세상 어딘가에는 나와 비슷한 고민과 걱정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조금이라도 내가 느끼고 생각하며, 고민하는 것들을 정리하여 공유한다면 지금 누구가에게는 힘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

나 자신을 위해 쓴 글이기 때문에 내가 제일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 같은 것도 되고, 나는 여전히 살아있구나를 느끼는 근원이 될 수도 있다.

그래! 박쥐다. 흡혈 박쥐같이 잔인한 이미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과일 박쥐는 되지 않을까?

눈을 뜨면 반복되는 하루가 될지도 모른다. Draft 1위의 신인 Rookie가 아닐 수도 있다. 빛바랜 사진 속에서 간신히 찾을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 어둠 속에서 남도 나도 의식할 수 없는 그 공간에서 이를 악물고, 오늘이라는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이들이 있기에 삶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을 어리석고, 멍청하다 손가락질 당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캄캄한 동굴 속에서 어떠한 기대가 생기지 않을 것 같더라도 동굴 입구에서 비추어오는 실낱 같은 짧은 빛을 따라 나아가다 보면 이내 동굴을 떠나 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날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까?

어느 것에도 구분되지 않고, 속하지도 않으며, 자유로운 상태의 날것 그대로의 나.

그게 바로 내가 아닐까? 아침부터 박쥐가 살아있다고 발버둥치는 것도 지친다.

최근 내 삶은…

삶은 일정한 주기를 가진 것 같다.

마치 지구를 중심으로 일정한 속도로 공전하는 달이나 자전하고 있는 지구만 보아도 자연의 이런 현상은 삶에서도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은 착각을 한다.

여전히 빙글빙글 돌고 있어도 다행일까?

어지러움을 느끼지 않아야 할 나는 스스로의 한계를 보며 어지러움과 유사하지만 완전히 극명하게 다른 종류의 어지러움을 경험한다.

아니 그건 어지러움이 아닐 것이다. 나는 스스로 어지럽다고 느낄 뿐 사실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고통이 분명하다.

유년 시절의 꿈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니 기억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럼에도 마음 속에서는 항상 무언가를 간절하게 애태우는 나의 목적을 상실한 갈망이 존재하고, 이 갈망은 가끔 영혼의 목마름이 되어 끊임없는 무한궤도 위를 달리는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가 되곤 한다.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잘하는지.. 생각 속에 유영하다 보면 내 삶이 아주 다양한 색을 띄고 있었다.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를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 유년기의 청소년 같다.

그럼에도 내 안에서 자라는 나는 더 큰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놀라운 잠재력을 지닌 아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나는 아직 꿈꿀수 있어서 다행이고, 그 꿈 안에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 있어 가장 큰 만족감을 주는 이유 아닐까?

그렇게 오늘도 생각해 본다.

율의 성장 일기 1

여전히 내 눈에는 아가같은 율이가 내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주일.

방송실에서 함께 고생하는 지체가 하반신 마비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예배가 끝나고 율이와 함께 병원을 방문했다.

중환자실이라 면회가 제한적이라 얼굴만 보고 나와 주차장을 향하는데..

율이가 내게 묻는다.

“아빠! 삼촌 많이 아파요?”

“아빠는 잘 모르겠어. 율이가 아빠랑 같이 기도할까? 삼촌 빨리 병원에서 나올 수 있도록…”

그러자 율이는 눈물을 흘리며 내게 대답한다.

“삼촌이 너무 불쌍해요! 아빠 삼촌 위해서 우리 오늘 꼭 기도해요.”

내 눈에는 아직도 아가 같은데…. 이 아이는 마음과 생각이 벌써 누군가를 걱정할줄 아는 만큼 성장해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과자를 한껏 먹고, 쓰레기를 아빠에게 건네주는 오만방자한 행동을 하지만 행동과 다르게 많이 성장한 것 같아서 뿌듯하기만 하다.

아이는 그 생각과 감정을 한껏 키워가고 있는데 아비인 나의 시간은 멈춰있는 착각 속에 산다. 그래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지만 내 생각과 감정은 지금 보다 더 어린 시절의 아이만 기억하려는 것 같다.

그 제한을 부수는 순간이 율이와 내가 마시지 않는 술이라 하더라도 한잔 받아 놓고 인생을 이야기 할 때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더 많은 요즘이다.

생강풀 위의 잠자리

잠자리

우리 집 거실 창문에 작은 화단을 만들었다.

햇살이 잘 드는 곳이기에 화분에 옮겨 심은 아보카도와 세탁실에 두었다가 싹이 나버린 생강도 함께 심었더니 무성하게 잘 자라더라.

기나긴 추석 연휴가 끝나고, 교회에 다녀와서 지친 아내와 율이가 잠이 들었을 때 잠시 거실에 누웠던 나도 깨고 나니 잠자리가 보였다.

핀이 나갔는지 확인할 겸 몇 장 찍었더니 더할 나위 없이 가을 사진이다.

가을바람에 살랑살랑 위태롭게 흔들려도 날갯짓 한번 흔들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

삶도 그렇지 않던가? 낙엽이 자문 거리더라도 그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는 나무처럼 깊게 뿌리를 내려야 하는 법이다.

배우고 싶은 것들에 대하여.. Part 1.

  1. 불혹의 나이라 한다.

이 시기에 무언가 배운다고 결정하면 ‘누군가는 어리석다.’ 어떤 이는 ‘부양할 가족들은?’이런 걱정과 의문에 가득한 질문들을 받곤 한다.

나의 20대는 내 인생의 후반이 없는 것처럼 선교단체에 헌신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내 삶을 이끌어갈지 고민하지 않은 채 ‘나의 부르심이 그곳에 있었다.’고 착각할 만큼 극단적인 결정을 했던 시절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도 내 안에 가득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대한 나의 반응이었고, 그 결정에 대해서 만큼은 후회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렇게 20대를 보내고 나니 내 행동에 후회보다는 내 또래의 비슷한 사람들과의 행보에 대한 부러움이 가득한 시절이기도 했다. 부모가 내어주는 등록금으로 학교에 다니고, 직업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러다 방향이 잡히지 않으면 쉽게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그런 친구들 말이다. 이상하게 내 주변에는 그런 친구들이 유독 많았는데 하나님은 그 때부터 남과 비교하는 인생으로 살지 않도록 나를 훈련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그 부러운 시절에 나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친구가 다니는 회사에 입사했다. 스피커를 조립하고, 조율하고, 포장하고, 배달하고…. 때로는 꽉 막힌 사장의 자랑을 귀가 막힐 정도로 듣고 또 들어야만 했다. 경기 불황이란 이유로 함께 일하던 친구들도 하나, 둘씩 회사를 그만두고 마지막까지 남은 나는 다른 대안이 생길 때까지 참아 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 인내에 종지부를 찍게 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추석 휴가비’였다.

사장은 경기가 좋지 않고, 힘드니까 서로 이겨내자며 나를 다독였고, 나는 그 말을 찰떡같이 믿었다. 긴 연휴가 끝나고 연휴 동안 있었던 일을 커피 믹스의 설탕이 녹아 들어가듯 나누고 있는데 사장이 조카들에게 나눠준 용돈을 이야기했고, 기가 막히게 기억력이 좋은 나는 그 말에 힘드니까 이겨내자는 사장의 말은 휴가비를 주지 않기 위한 술수라는 사실을 깨닫고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을 더 고민하던 중에 사장은 또 경기가 좋지 않아 급여를 정확한 날짜에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때가 내 기억에는 이미 2달이 밀린 상태였는데 또 지급되지 않는 현실에 낙담할 수 밖에 없었다. 함께 일하던 김 주임은 추석 그 사건이 있었던 이후로 무단결근으로 나오지 않았고, 결국에는 사직하게 되었다. 사직하는 순간에도 사장은 밀린 임금이나 다른 처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환송회 없이 그렇게 퇴사를 종료했다.

김 주임이 퇴사한 직후 사장은 내게 ‘경기가 좋아지면 급여를 올려줄 테니 그때까지 참아보자.’고 했다. 그러나 경기가 좋아져도 내 급여가 오를 것이라는 확신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사장의 미국 지인으로부터 배송된 새로운 장비들이 들어 오고 있었고, 나는 내 급여가 저런 곳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울분을 참지 못했다.

그렇게 퇴사 의지를 전달했을 때, 사장은 노발대발 난리를 쳤고, 사장의 어머니까지 와서 ‘왜 그만두냐고?’ 물어보며 ‘힘들더라도 참아달라.’며 나의 의지를 꺾으려 했다.

그때 난 이런 생각을 했다. 가족 앞에서 명예와 체면이 중요하고, 직원들의 ‘생활과 안정’에는 관심 없는 이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있을까? 회사의 어려운 사안에는 직원들 대부분을 참아내며, 견디며, 고통을 분담하려 한다. 그러나 사장들은 여전히 고급 세단과 넓은 평수의 집에서 호화롭게 지낸다. 그 어디에도 고통 분담이란 없단 말이다. 그래! 사장도 힘들었을 것이다. 직원들의 급여를 밀릴 때마다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장의 감정과 나의 현실은 같을 수 없다.

회사를 정리하고 길을 잃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고, 자신도 없었으며, 고작 1년 남짓 일한 경력은 다른 회사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었다.

한 달 보름이 지났을까? 사촌 동생의 결혼식을 다녀오고, 가깝게 지내는 후배를 신길에서 만나기로 했다.

신길역 1호선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저 멀리 지팡이를 짚고 있는 아저씨 한 분이 철도 안전망을 두드리며 갈 바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자 아저씨가 먼저 내가 물어본다. “학생! 김포 가는 지하철을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고 아저씨가 계신 곳은 1호선이라며 제 팔을 잡고 따라오시라고 하자 아저씨는 계속 “고맙다.”며 그 마음을 전하신다. 아저씨의 마음이 전해질 때마다 온몸에 벤 고기 냄새와 술 냄새가 아찔할 정도로 풍겨 왔고, 아저씨는 오늘 동생이 장가간 날이라며 기분 좋아서 한잔했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고맙다는 말 뒤에 전해지는 묘한 슬픔은 다름 아닌 장가간 동생에 대해 미안함이었고, 그 미안함 속에 동생에 대한 고마움과 나에 대한 고마움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아저씨는 ‘나 같은 사람이 살아도 될까?’라고 자꾸 물어 보셨다. 내 꼬락서니도 형편없는데 감히 대꾸할 수 없었고, 5호선 플랫폼에 전철이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아저씨를 보내면 닫힌 전철 문 앞에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저씨! 괜찮아요! 동생도 형을 자랑스러워 할 거예요.” 아저씨가 나의 대답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다시 1호선을 향해 올라오는 내게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순길아! 너도 괜찮다. 내가 너를 자랑스러워한다.” 그리고 ‘If you has one shout, one opportunity. just do something like you can someone help’

내게는 그것이 계시였고, 예언이었으며, 행동 강령이었다.

나의 20대가 그 안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40대가 되었다. 아직도 하나님 앞에서는 어린아이 같으며, 배우고 싶으며, 응석 부리고 싶고, 다가가고 싶다.

삶과 죽음

태어난 이상 이 세상에 쓸모없는 인간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우리를 진자의 추를 따라 흔들리며 양극단이란 선택을 보게 된다.

막상 스마트 폰에 저장된 수많은 전화 보다 저 한통의 전화가 더 도움되나 보다.

디지털 안에 갇혀 마음의 따뜻함을 잊어버린 사람들.

그 군중 속의 고독으로 인해 우리는 극단이란 선택을 하게 되는가 보다.

수많은 십자가가 밤거리를 비추지만, 극단의 선택 앞에 놓인 이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나 보다.

운동 삼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무거워진 몸의 가벼워짐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생각의 무게는 현저 줄어들었다.

가벼워진 생각보다 가벼워지는 몸을 더 기대해 보지만…. 갈 길이 참 멀다.

삶과 죽음

신념이란?

말 그대로 “신념”이란 무엇일까?

명사로 “굳게 믿는 마음”이라 한다. 무엇을 굳게 믿을 것인가?

나에게 어떤 “신념”이라는 것이 생겼을 때, 그 신념은 무엇을 따라서 어떻게 내 안에 발생하고 자란 것일까?

내가 무엇을 믿는지 설명할 수 없는데 그것을 굳게 믿고 있다고 말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신념이 성숙해져 간다는 의미는 내가 믿고 있는 믿음이 다른 그 어떤 것보다 더 깊이, 넓게 자리 잡아 확고한 어떤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내 안의 신념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굳게 믿고 있는 것일까?

한동안은 이런 생각마저도 내게는 사치 같았다. 그저 해가 뜨고, 지는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 주는 게으름에 취해 있었을 뿐이다.

아이의 성장도, 아내의 배려나 섬김도 사치 같고, 어떠한 의미도 될 수 없었으며, 타인의 접근은 말 그대로 방해 또는 일이 되는 것이었다.

내 안의 신념이 바뀐다면 그것은 나를 죽음 또는 지금까지 살면서 쌓아도 모든 과정과 결과 자체를 부정하며, 무너뜨리는 극단적인 상황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했었다.

20대 내가 품었던 “신념”과 30대를 지나 40대의 입구에 선 지금의 내 “신념”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마치 아이가 언어와 규칙을 배우듯이 나 또한 그 언어와 규칙을 따라 성장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런데도 여전히 상황 속에 놓여 위치나 방향을 상실한 채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불안한 조각배에 탑승해 있는 것 같기만 하다.

내 안의 신념이 더욱 성숙해지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신념을 성숙하게 하려면 노력해야 할까?

아직은 모호한 질문들뿐이고, 갈피를 알지 못한다.

그렇게 내 삶의 지도 위에 다양한 경험이란 깃발이 꽂히고, 이 여정의 끝에서 무엇이 자랐는지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