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

최근 김영하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비슷한 고민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젊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다. 그 분들에게 내가 좋은 사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을 생각할 때 내 안에 그 사람에 대한 정체 불명의 형태가 있다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그 형태는 때로는 붉은 색을 담은 힘이며, 보일 듯 말듯 아주 작은 점이기도 하며, 내 생각의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의 깊이와 넓이로 나를 흔들고 자극하는 그런 형태이기도 하다.

오늘은 어떤 이유에서가 아니라 나도 그런 형태의 사람들과 관계에 지쳐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사색을 즐기거나, 좋은 장소에서 기념이 될 만한 무언가를 했다면 내게 더 유익했을텐데 나는 그 시절의 사람들에게 중독되어 있었다.

아니 사람이 그리웠고, 사람 때문에,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게 전부였던 시절인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 내가 느끼며 생각하는 것을 따라 글을 쓴다.

키보드의 둔탁한 소리 뿐만 아니라 글에 집중하는 짧은 순간만큼은 내 안의 나를 바라보며 나에게 가장 정직한 자세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이유?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자신과의 우정을 쌓아가는 시간이다.

나는 박쥐다!

포유류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류도 아닌 어둠과 더욱 친해 그 이미지 마저 ‘흡혈’이라는 단어와 제일 잘 어울리는 존재.

“박쥐”

마치 그 존재 처럼 나도 내 삶에서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실패가 두렵다. 사실 실패보다 실패 한 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이 없다는 것이 더욱 무서울 뿐이다.

어떤 일을 하다가도 다시 안정적인 일들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나는 나를 거침없이 박쥐라고 부르게 되었다.

남들 보다 과격한 일들을 거침 없이 해 왔다. 믿고, 버려지는 상황 속에서도 내가 가진 믿음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생각 그리고 행동으로 살아왔다.

그런 내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어두운 동굴 속 습한 기운에 몸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배트맨처럼 부자나 탁월한 운동력 혹은 매력이라고는 찾을 수 없지만 그래도 살펴 보면 내 안의 박쥐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매력은 충분하다 생각한다.

누군가는 의아해 한다. 이런 류의 글을 왜 그렇게 쓰는지? 그리고 이 글이 포스팅되고 나를 걱정해 주시는 분들의 전화가 온다.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면 세상 어딘가에는 나와 비슷한 고민과 걱정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조금이라도 내가 느끼고 생각하며, 고민하는 것들을 정리하여 공유한다면 지금 누구가에게는 힘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

나 자신을 위해 쓴 글이기 때문에 내가 제일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 같은 것도 되고, 나는 여전히 살아있구나를 느끼는 근원이 될 수도 있다.

그래! 박쥐다. 흡혈 박쥐같이 잔인한 이미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과일 박쥐는 되지 않을까?

눈을 뜨면 반복되는 하루가 될지도 모른다. Draft 1위의 신인 Rookie가 아닐 수도 있다. 빛바랜 사진 속에서 간신히 찾을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 어둠 속에서 남도 나도 의식할 수 없는 그 공간에서 이를 악물고, 오늘이라는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이들이 있기에 삶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을 어리석고, 멍청하다 손가락질 당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캄캄한 동굴 속에서 어떠한 기대가 생기지 않을 것 같더라도 동굴 입구에서 비추어오는 실낱 같은 짧은 빛을 따라 나아가다 보면 이내 동굴을 떠나 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날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까?

어느 것에도 구분되지 않고, 속하지도 않으며, 자유로운 상태의 날것 그대로의 나.

그게 바로 내가 아닐까? 아침부터 박쥐가 살아있다고 발버둥치는 것도 지친다.

율의 성장 일기 1

여전히 내 눈에는 아가같은 율이가 내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주일.

방송실에서 함께 고생하는 지체가 하반신 마비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예배가 끝나고 율이와 함께 병원을 방문했다.

중환자실이라 면회가 제한적이라 얼굴만 보고 나와 주차장을 향하는데..

율이가 내게 묻는다.

“아빠! 삼촌 많이 아파요?”

“아빠는 잘 모르겠어. 율이가 아빠랑 같이 기도할까? 삼촌 빨리 병원에서 나올 수 있도록…”

그러자 율이는 눈물을 흘리며 내게 대답한다.

“삼촌이 너무 불쌍해요! 아빠 삼촌 위해서 우리 오늘 꼭 기도해요.”

내 눈에는 아직도 아가 같은데…. 이 아이는 마음과 생각이 벌써 누군가를 걱정할줄 아는 만큼 성장해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과자를 한껏 먹고, 쓰레기를 아빠에게 건네주는 오만방자한 행동을 하지만 행동과 다르게 많이 성장한 것 같아서 뿌듯하기만 하다.

아이는 그 생각과 감정을 한껏 키워가고 있는데 아비인 나의 시간은 멈춰있는 착각 속에 산다. 그래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지만 내 생각과 감정은 지금 보다 더 어린 시절의 아이만 기억하려는 것 같다.

그 제한을 부수는 순간이 율이와 내가 마시지 않는 술이라 하더라도 한잔 받아 놓고 인생을 이야기 할 때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더 많은 요즘이다.

배우고 싶은 것들에 대하여.. Part 1.

  1. 불혹의 나이라 한다.

이 시기에 무언가 배운다고 결정하면 ‘누군가는 어리석다.’ 어떤 이는 ‘부양할 가족들은?’이런 걱정과 의문에 가득한 질문들을 받곤 한다.

나의 20대는 내 인생의 후반이 없는 것처럼 선교단체에 헌신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내 삶을 이끌어갈지 고민하지 않은 채 ‘나의 부르심이 그곳에 있었다.’고 착각할 만큼 극단적인 결정을 했던 시절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도 내 안에 가득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대한 나의 반응이었고, 그 결정에 대해서 만큼은 후회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렇게 20대를 보내고 나니 내 행동에 후회보다는 내 또래의 비슷한 사람들과의 행보에 대한 부러움이 가득한 시절이기도 했다. 부모가 내어주는 등록금으로 학교에 다니고, 직업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러다 방향이 잡히지 않으면 쉽게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그런 친구들 말이다. 이상하게 내 주변에는 그런 친구들이 유독 많았는데 하나님은 그 때부터 남과 비교하는 인생으로 살지 않도록 나를 훈련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그 부러운 시절에 나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친구가 다니는 회사에 입사했다. 스피커를 조립하고, 조율하고, 포장하고, 배달하고…. 때로는 꽉 막힌 사장의 자랑을 귀가 막힐 정도로 듣고 또 들어야만 했다. 경기 불황이란 이유로 함께 일하던 친구들도 하나, 둘씩 회사를 그만두고 마지막까지 남은 나는 다른 대안이 생길 때까지 참아 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 인내에 종지부를 찍게 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추석 휴가비’였다.

사장은 경기가 좋지 않고, 힘드니까 서로 이겨내자며 나를 다독였고, 나는 그 말을 찰떡같이 믿었다. 긴 연휴가 끝나고 연휴 동안 있었던 일을 커피 믹스의 설탕이 녹아 들어가듯 나누고 있는데 사장이 조카들에게 나눠준 용돈을 이야기했고, 기가 막히게 기억력이 좋은 나는 그 말에 힘드니까 이겨내자는 사장의 말은 휴가비를 주지 않기 위한 술수라는 사실을 깨닫고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을 더 고민하던 중에 사장은 또 경기가 좋지 않아 급여를 정확한 날짜에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때가 내 기억에는 이미 2달이 밀린 상태였는데 또 지급되지 않는 현실에 낙담할 수 밖에 없었다. 함께 일하던 김 주임은 추석 그 사건이 있었던 이후로 무단결근으로 나오지 않았고, 결국에는 사직하게 되었다. 사직하는 순간에도 사장은 밀린 임금이나 다른 처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환송회 없이 그렇게 퇴사를 종료했다.

김 주임이 퇴사한 직후 사장은 내게 ‘경기가 좋아지면 급여를 올려줄 테니 그때까지 참아보자.’고 했다. 그러나 경기가 좋아져도 내 급여가 오를 것이라는 확신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사장의 미국 지인으로부터 배송된 새로운 장비들이 들어 오고 있었고, 나는 내 급여가 저런 곳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울분을 참지 못했다.

그렇게 퇴사 의지를 전달했을 때, 사장은 노발대발 난리를 쳤고, 사장의 어머니까지 와서 ‘왜 그만두냐고?’ 물어보며 ‘힘들더라도 참아달라.’며 나의 의지를 꺾으려 했다.

그때 난 이런 생각을 했다. 가족 앞에서 명예와 체면이 중요하고, 직원들의 ‘생활과 안정’에는 관심 없는 이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있을까? 회사의 어려운 사안에는 직원들 대부분을 참아내며, 견디며, 고통을 분담하려 한다. 그러나 사장들은 여전히 고급 세단과 넓은 평수의 집에서 호화롭게 지낸다. 그 어디에도 고통 분담이란 없단 말이다. 그래! 사장도 힘들었을 것이다. 직원들의 급여를 밀릴 때마다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장의 감정과 나의 현실은 같을 수 없다.

회사를 정리하고 길을 잃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고, 자신도 없었으며, 고작 1년 남짓 일한 경력은 다른 회사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었다.

한 달 보름이 지났을까? 사촌 동생의 결혼식을 다녀오고, 가깝게 지내는 후배를 신길에서 만나기로 했다.

신길역 1호선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저 멀리 지팡이를 짚고 있는 아저씨 한 분이 철도 안전망을 두드리며 갈 바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자 아저씨가 먼저 내가 물어본다. “학생! 김포 가는 지하철을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고 아저씨가 계신 곳은 1호선이라며 제 팔을 잡고 따라오시라고 하자 아저씨는 계속 “고맙다.”며 그 마음을 전하신다. 아저씨의 마음이 전해질 때마다 온몸에 벤 고기 냄새와 술 냄새가 아찔할 정도로 풍겨 왔고, 아저씨는 오늘 동생이 장가간 날이라며 기분 좋아서 한잔했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고맙다는 말 뒤에 전해지는 묘한 슬픔은 다름 아닌 장가간 동생에 대해 미안함이었고, 그 미안함 속에 동생에 대한 고마움과 나에 대한 고마움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아저씨는 ‘나 같은 사람이 살아도 될까?’라고 자꾸 물어 보셨다. 내 꼬락서니도 형편없는데 감히 대꾸할 수 없었고, 5호선 플랫폼에 전철이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아저씨를 보내면 닫힌 전철 문 앞에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저씨! 괜찮아요! 동생도 형을 자랑스러워 할 거예요.” 아저씨가 나의 대답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다시 1호선을 향해 올라오는 내게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순길아! 너도 괜찮다. 내가 너를 자랑스러워한다.” 그리고 ‘If you has one shout, one opportunity. just do something like you can someone help’

내게는 그것이 계시였고, 예언이었으며, 행동 강령이었다.

나의 20대가 그 안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40대가 되었다. 아직도 하나님 앞에서는 어린아이 같으며, 배우고 싶으며, 응석 부리고 싶고, 다가가고 싶다.

삶에 대하여…

며칠 전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쌍동이 형제의 안타까운 사연을 읽은 기사가 있다.

건강보혐료를 17개월 정도 체납한 상태로 한 날 거의 비슷한 시간에 태어난 형제는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회의 불평등을 어떻게 논할 수 있을까?

수입이 많은 사람이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지만 현실속에서는 괴리가 많은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법 안을 마련하는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은 대부분이 일정 소득이상을 보유한 사람들이다.

거기에 그들은 국회의원이라는 그 감투로 국가로 부터 보장 많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그들 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도 작은 집 하나 마련하기 힘든 세상이다.

검사가 은퇴하여 변호사가 되어도 “전관예우”라는 명목으로 판결을 유리하게 바꿀 수 있다는 현실이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될 수 있다. 쉽지 않은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

반면 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문제를 돈이 없어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삶이 이대로 존속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제시하고, 그들에게 떳떳하고, 정당하게 경쟁해도 괜찮은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할아버지의 재산과 부모의 정보력으로 명문대학에 갈 수 있다고 한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 이제는 의미가 없는 말이 아닐까?

떠나간 쌍동이를 생각하며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렇게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지만, 그 고통을 이해한다는 글을 남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렇게 우리의 업은 더욱 무겁기만 하다. 삶은 치열하다.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보면 희극이라 했던 이에게 다시 묻고 싶다. 가까이 보건 멀리 보건 비극이 되어버린 이들에게 어떻게 삶을 설명할지 반문하고 싶어졌다.

희극이라… 돌아보니 꽃길이라.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이삭. 그의 인생

피하는 것은 비겁하고, 초라하고, 어리석은 행동에 대한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이 남자를 만나면서, 피하는 것이 결코 비겁하고, 초라하고, 어리석은 행동이 아님을 봅니다. 왜냐하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그런 선택을 해야 했는지 그 사실과 이유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남자가 아버지를 따라 산행길을 나섭니다. 아버지는 항상 집 근처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날 아침. 아버지는 갑자기 짐을 나귀에게 싣고 자신을 따르라고 이야기 합니다.

아들은 그저 항상 하던 제사를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드리는 줄 알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아들은 항상 아버지 곁에서 지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제사에 드리는 것들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아침은 조금 달랐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날 때 즈음. 아들은 아버지에게 물어봅니다. “아빠! 제사에 드릴 양은 어디에 있나요?” 아버지는 놀랐을 겁니다. 아들에게 사실을 말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아버지는 아들에게 “번제에 드릴 제물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실 거야.”라고 대답하며 가던 길을 재촉합니다. 아들은 그 말을 정말 믿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 갑니다. 마침내 그 산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끈을 묶습니다. 성경은 이삭이 반항 했다거나 도망 가거나 아버지에게 소리 질렀다고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 아들의 목에 칼을 든 순간.

하나님의 천사가 소리 칩니다.
“아브라함! 아브라함! 멈춰라! 알았다. 그에게 손대지 말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이제야 알았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무에 뿔이 걸린 수양을 대신 번제로 드립니다.

어린 시절의 이런 경험은 쉽게 잊혀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의 인생에서도 수많은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10대. 사춘기 시절을 이미 백살이 넘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보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보다 더 강해 보이는 이복형이 자신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사랑하는 어머니가 떠납니다. 이 아들은 어떻게 삶을 이겨내야할 지 잘 모릅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해질녁 즈음에 묵상을 하며 서성이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아내가 생기고, 비로소 그는 마음에 위로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하는 일들이 너무 잘 되어서 주변의 다른 이들이 시기 하기 시작합니다. 이웃 마을의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가 파 놓은 우물을 막고, 쫓아내려 합니다. 그는 다시 막힌 우물을 팝니다. 그러면 이웃 마을 사람들이 와서 자신들의 우물이라 주장합니다. 그러면 또 장소를 옮깁니다. 그런 일을 반복하면 짜증이 날 겁니다. 그러나 그는 처음 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슬퍼런 칼 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을 때, 자신을 대신할 수양을 준비하시던 그 하나님의 섭리와 방법 그리고 그 분이 일하시는 모든 것이 옳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 우물 파는 일이 거의 마쳐 갑니다. 그 때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이름을 부르던 그 목소리가 이제는 이삭을 찾아 옵니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미 유년 시절에 아버지에게 죽임 당할 뻔 한 소년이 이제 장성해서 40살이 넘었는데 무서워 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두려워 말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두려워 하지 말라는 뜻이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소심하고, 나약하게, 그리고 비겁하게 이웃 마을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그의 마음 한 구석을 보셨던 것 아닐까요?

그 남자의 인생 이야기가 오늘 제 마음을 울립니다. 39살. 이 회사, 저 회사를 옮기며 소명이라는 것을 찾고 싶었습니다. 함께 마음과 뜻을 다해 좋은 일을 세워 갈 수 있는 그런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간절히 원했던 회사에 당당하게 입사해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경계를 따져 가며 새로운 방법과 다양성을 찾아가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그 남자처럼 거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인생 만큼이나 비겁하고, 소심하고, 어리석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은 겁니다. 하나님과 함께 나의 인생을 살아간다면 괜찮은 겁니다. 그가 인도하시기 때문에… 나는 오늘 괜찮은 인생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