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키가 자란다. 단순히 외형적인 변화가 아니라 그 안에는 아이의 정서와 생각 그리고 꿈과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6년 전 아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랬다. 새벽에 갑자기 양수가 터지고, 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깨워 짐을 꾸리도록 지시하는 아내와 아무 것도 모른체 호들갑 떨고 있는 내가 있었다.
아무 것도 몰랐다는 건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종종 그 의미를 겸양이나 혹은 그런 척하는 무형의 포장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래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
시간이 지나고 이 아이는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한다. 때론 아비가 들어줄 여유가 없고, 어미 또한 정신없어 세세히 돌보지 못해도 아이는 자라고 있었다.
장난스런 표정 뿐만 아니라 때로는 남의 자신 보다 더 아끼고 헤아리는 마음을 담은 아이.
내가 바라고 원해서 키운 것도 아닌데 아이는 아비의 걱정 보다 더 잘자라고 있다.
식당에 들어가면 가족끼리 손을 잡고 돌아가며 기도해야 하고, 잠자기 전에는 반드시 가족을 위해, 부모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기도한다.
‘엄마, 아빠 더 사랑하게 해 주시고, 우리 가족 행복하게 해 주시고,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기도하는 아이.
더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지만… 그저 지금처럼 자라길 바라는 그 욕심 하나만큼은 가져보고 싶다.
아이가 자란다. 나도 늙어간다. 내 아비도 늙어간다. 그렇게 삶은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며, 숨을 멈추는 큰 원 안에 있다.
그럼에도 그 순간. 자라는 순간에 아이의 눈을 맞추고, 아버지의 삶을 담아 보려한다.
아직 아이의 성장을 지켜 볼 이유와 의무와 책임. 무엇보다 삶이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