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30.

참을 수 없는 고통을 함께 나누며 각자의 위치에 자신의 해야 할 것을 바르게 알며, 올곧게 그 길 위에 서 있을 수 있는 관계가 있을까?

남편과 시아버지는 죽고, 이제 남은 것은 시어머니와 형님뿐인 상황에 놓은 이방 여인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한때 그녀와 남편과 시부모는 굉장히 부유한 집안의 사람이었다.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그녀의 동네로 이사를 왔고, 그녀는 두 형제 중의 막내에게 시집을 갔다.

단란하게 가족을 꾸리고 행복을 느꼈던 것도 잠시, 순식간에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 단호한 슬픔이 되어 그녀의 삶 전체를 뒤바꿔 버렸다.

시아버지를 시작으로 남편과 그의 형의 죽음을 지켜 보았고,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을 포함한 여인 셋.

그렇게 그녀들의 슬픔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어느 날 시어머니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며느리들을 앉혀 놓고, 각자의 갈 길을 가라고 권하고 있었다.

큰 형님은 자신의 길을 가기로 선택하고, 그녀 홀로 시어머니 옆에서 살며 시어머니를 따르기로 한다.

어찌 된 일인지 고향으로 돌아온 시어머니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은 하나 없었다. 소망은 그렇게 소망이란 이름으로 불릴 뿐 다른 이유나 목적 그리고 주린 배를 채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은 추수가 끝난 넓은 들판에 나아가 떨어진 이삭을 주어다가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것이 전부.

그러나 그녀는 이방인이라는 차별의 멍에를 두르고 들판에 나아가 홀로 이삭을 주우며 생활한다.

대부분의 삶이 이렇게 끝이 나지 않던가? 그리고 시어머니와 행복했다. 배부르게 먹고 즐겁게 살았다. 이런 문장이 마지막에 남으면 한 여인의 인생도 그녀와 함께 했던 시어머니의 인생도 끝이 나고 만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어머니의 먼 친척 중에 부유한 사람이 있었고,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던 그는 그녀를 위해 사람을 시켜 들판에 많은 이삭을 일부러 떨어뜨려 놓기도 하고, 그녀에게 음식과 물을 주며 빡빡한 인생에 잠시나마 쉼을 주기도 한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와 시어머니에게 오늘 일어난 일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 시어머니는 몇 가지를 지시하고 며느리인 그녀는 그 지시 사항을 따르며 지켜낸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 출가하는 그녀. 그리고 그녀의 삶 전체를 멍에로 이끌고 있던 이방인에서 이제 그녀는 한 남자의 당당한 아내로 그리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문의 기록된 여인으로 그 이름이 존재하게 된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굿룻”이란 여인의 이야기이다.

아침부터 깨어진 관계와 인생을 묵상하는데 내게 보인 의미가 바로 그녀의 삶 자체였다. 쉬운 삶은 없으며, 100% 만족이란 이름으로 꽉 채워진 인생도 없다.

그렇게 우리의 삶에는 잃어버린 부분도, 채워진 부분도 함께 존재하며 그 두 가지가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며 인생의 굴곡을 만들지 않던가?

나는 오늘 아침에도 이 글을 남기며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로 결정한다.

그 분이 아니면 내 인생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 분이기 때문에 내 삶의 어떠한 고난도 일방적인 폭력으로 기억으로 존재하지 않고, 나를 연단하기 위한 훈련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