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머리에 꽃을 꽂고

그렇게 걸어다니며 내 안에 있는 광적으로 들끓어 오르는 감정을 모두 버리고 싶었다.

마치 투명한 유리병에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차 있던 것이 흔들리는 감정과 함께 구정물이 되었다가 그 요동치던 감정이 사그라지면 유리병 아래에 가라앉아 다음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일보다 관계가 중요한 사람이다. 일에 높고 낮음은 책임지는 위치가 다른 것이라 배웠고 나 또한 내 아래의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그렇게 책임지는 선배로 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었다.

나를 흔드는건 결국 내가 아니라 외부의 자극이었다.

이 투명한 유리를 자극하는 요소는 일을 핑계로 마치 하청 업체의 판견직을 대하는 동료의 행동이며 조금 높은 직책을 무기로 모든 업무를 전가하는 무책임한 상사들의 폭력이 주요 요인이다.

일에 대한 협의는 그 일의 주체가 누구인지 구분짓는 것이며 그 일을 책임지고 할 수 있는 부서나 사람에게 적절히 배분하기 위한 것인데…. 이놈의 조직은 “그냥 해!”가 더 많다.

부장이라 이사라 상무라.. 그렇다고 한다.

부장은 부장이라 안 하고, 이사는 이사라 안 한다. 상무 새끼는 부하 직원 관리는 자신의 직물하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근데 이 셋이 이미 망한 회사에서 부장으로 차장으로 과장으로 근무하던 놈들이다.

나름 자신들이 아주 큰 회사의 중요 직책을 감당했기 때문에 이런 일은 아주 잘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이사가 마우스를 납품하기 위해 고객을 찾아가는 삼류 영업 집단이다.

그래도 영업력 하나는 탁월한데 이 말은 얼굴에 철판이 두꺼워서 창피와 수치심을 모르기 때문이지 그 감정을 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그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먹고 싶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건드린다는 것 자체가 싫어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변화에 목이 마르다.

내 내면의 속사람이 원하고 있고, 겉사람 또한 그것을 정말 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다만 일과는 별개로 아침에 일찍 눈을 뜨지만 그냥 누워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즉 흥미를 잃었다는 것이다.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고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자원하는 마음이 참 큰 사람이다. 내가 자원해서 하겠다는 일에 대해서 소홀히 여겨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마음이 마치 활활 타오르던 숯불이에 어마어마한 양의 차가운 물을 한번에 뿌려서 그 불씨를 꺼버린 것과 같은 상태이다.

살아가야 한다.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다. 일을 쉬면 전기료 부터 아이의 교육비까지 모든 것이 빚이 되고 짐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 현실 너머 내 이상을 찾아가는 것이 내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I am still alive.

근심을 넘어서..

최근 내 삶의 큰 변화를 따져보면 “관계”란 녀석의 새로운 면을 보았다는 것이다.

내 삶이란 큰 울타리 아니 관계의 울타리 안에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변함없이 어떠한 사심이 첨부되지 않은 그런 사람(관계)가 몇명쯤 된다.

그 중 하나가 최근 내게 있어 가장 큰 고민이자 상심 그리고 배신과 분노라는 몇가지 극단적인 감정을 끌어내어 결구 깨어짐이란 결과를 가져왔다.

사람에 대한 분노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일까?

사실 그렇게 간단한 몇단어의 감정의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하고 복잡하며 꽤 심오한 감정이라 정의 내릴 수 있다.

다시 회복하고 싶은가? 아니. 다양한 관점에서는 “용서”란 이름의 면죄부를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사용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전처럼 편하게 밥을 먹고, 담소를 나누며, 서로의 관심사나 혹은 걱정이나 고민을 함께 나눌 생각은 없다.

그래도 괜찮은 걸까?

한동안 멍한 상태이다. 누구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을 만큼 나는 그렇게 내 관계를 현명하게 바라보고 있으며 내가 가져가야 할 책임에 대해서 단호하고 분명하며 선명하고 뚜렷하게 정의했다 믿었는데 그 믿음의 배반이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그 무언가가 되어 버린 것은 사실이다.

처음 그것을 선택할 때 약 2주 동안을 고민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이 망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지극히 관계주의적인 나로서는 그 모든 것이 위험 요소였다.

나는 두렵다.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그리고 관계를 만들어 온 지난 날들의 사람들 모두가 지금은 두렵기만 하다.

결국 나는 그 두려움의 상자를 버릴 것이다. 그래도 그 상자 안에 나를 옳아매는 모든 지난 날의 감정이나 생각과 부적적인 요소 모두 담고 싶은 것이 지금의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생각이 정리되니 새로운 방향이 보이고, 새로운 방향이 보이니 나아갈 용기가 필요한데…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게 지금 나의 제일 큰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