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넘어가는 해는 관심없고 오로지 손끝에 느껴지는 모래 놀이에 집중한 아이.

그 모습에 어찌보면 삶에 대한 고민이나 문제에 대한 태도를 저렇게 넘겨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러가지 고민 중에 가장 큰 고민은 사실 “돈”에 대한 고민이고 문제이겠지만 그건 “돈”만 있으면 해결되는 것이니 논외로 제껴 놓는다.

요즘 내가 느끼는 고민은 “관계”이다. 영화 대사로 자주 등장하는 것 처럼 “배려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는 말처럼… 관계 안에서의 문제는 항상 배려 받는자가 아니라 배려 하는 자의 고통이 된다.

장모님을 모시는 것이 내게 그런 일이 되었다. 처음에도 배려를 요청하더니 배려를 했을 뿐인데… 요구가 늘어난다. 결국 호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장모님이 혼자 계시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에 결정했다. 그 결정이 옳은 것이든 잘못된 것이든 나는 그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태도에 대해 말하지 못한 것이 그리고 제대로 선을 긋지 못한 것이 후회되고 지금은 그 관계를 끊을 생각까지 하고 있는 나를 본다.

간 밤에 울분에 잠을 잘 수 없었다. 미안해 하는 아내는 둘째 누나가 자신에게 했던 말들 꺼내고.. 결굴 둘째들의 뼈를 찌르는 가시 같은 말들에 상처 받았을 뿐이다.

돌아갈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타임머신이든 뭐든 타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나는 이 삶이 싫다. 내가 선택한 삶이 아닌 것도 있겠지만 자신들의 삶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연로한 어른을 무기 삼는 그 행태가 보기 싫고, 자신들의 자식을 명분으로 삼아버린 그 생각이 꼴 보기 싫다.

어찌해야 할까? 어제 부터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는 나를 발견한다.

다 버리고 다 놓고 다 치우고 떠나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다. 내 생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에 나는 길 위에 서 있고 싶은 것이다.

아이의 미소가 날 웃게 한다. 아이의 기도가 날 살게 한다. 아이의 간절한 바램이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나는 오늘을 그렇게 살고 있다.

[Review]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스포일러 없음-

고민.
말하고 싶지만 들어주는 이 없고, 듣고 싶지만 말하는 이들이 없는 것.

나눈다고 해결되지 않고, 듣는다고 도움이 될 수 없는 것.

그러나 일단 말하고, 나누고,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해결이되고, 도움이 되며,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것.

그렇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저 믿고 읽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니까…

다른 이들의 서평이나 논평 또는 리뷰를 읽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 읽고 싶었고, 그의 세계관에 빠져들고 싶었다. 다행이었을까? 화요일 부터 내 왼쪽 어깨에 문제가 생기고 쉼을 얻게 되었다.

해야 할 것은 산더미인데 한가롭게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단 이틀만에 마지막 페이지 까지 읽을 수 있었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의 부재라고 한다. 아니 어찌보면 디지털 소통의 기기는 풍부하고 다양해졌지만 그 안에는 ‘인간미’라는 것이 배제된 기술이 전부라 생각된다.

가까운 곳에 사는 지인들과 식사 한번 하기 힘들고, 오랜만에 모인 명절에는 듣기 싫은 이야기만 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전달에 의한 일종의 대화 폭력이 소통을 막는 원인이 아닐까?

소설이란 장르를 빌려 기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알게되는 순간이다. 그런 사람이 있고, 장소가 있고, 이야기가 있는 곳.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않더라도 내 안의 고민을 말할 수 있는 곳.

사회의 성장과 함께 억울함을 들어주는 이들은 없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외치던 어린 시절 뉴스로 보았던 그 사람의 외침이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바뀌어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 현실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말할 수 없는 이들의 그 고요한 외침에 얼마나 나는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책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그런 곳이 필요하다고 그 필요에 대해서 역설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낀다. 그와 더불어 어린 시절 삼삼오오 빈집에 모여 장래 희망을 이야기 하던 친구들과 동네 어귀에서 한껏 소리지르며 뛰놀 수 있었던 그 시절에만 허락된 일상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고민은 내 안에 있다. 그래도 해결의 방법 또한 내 안에 있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