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군의 “흥”

오랜만에 Logic X 에서 노래나 만들어 볼까 싶어서.. 이것 저것 적용해 보던 순간이었다.

플레이를 누르는 순간 율이의 흥이 터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아들은 소리를 지른다.

어이쿠! 우리 집에 3층 또는 4층이었다면…

싸움 날 뻔 했다.

율이의 흥! 이건 분명… 엄마의 유전자에서 시작된 것이다. 내꺼는 DNA에 이런 흥은 존재하지 않아라고 쓰고 도망치듯 업데이트 해 본다.

기도하는 권율

2015년 부터 율이와 함께 저녁 마다 성경 한 장을 읽고, 기도하는 형식의 가족 예배를 드리고 있다.

외출했다가 부득이하게 일정이 늦어지면 잠자리에 들면서 기도를 하더라도 포기 하지 않고 지켜나가는 일종의 원칙으로 정해 놓고, 내가 지치면 아내가 힘을내서 지켜내고 있다.

그런 율이와 어제 함께 예배 드리는 순간.

율이는 사진과 같이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고, 기도를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기도를 하다가 깜짝 놀라고, 아내는 부랴 부랴 아이폰을 꺼내서 사진을 남겼다.

어찌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을 율이의 행동을 통해서 깨우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힘들 때 마다 율이가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엄마! 기도해 주세요.”

그래서 아내는 어린이집을 갈 때 마다 기도해 준다고 한다. 그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돌아 온다.

시편은 이렇게 말한다.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수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시편 8편 2절.

기도하는 권율

관계

최근에 많은 고민을 내 앞에 두고, 집중하며, 하나씩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삶의 방향을 이끌어 가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고민은 아들 ‘율’이와의 관계이다.

율이를 갖고, 7개월 거의 만삭이 된 배를 움켜 쥐고 아내는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3개월 뒤. 원래 예정일은 24일이어서 나는 19일에 귀국했고, 율이는 마치 아빠를 기다렸다는 듯이 20일 오후에 태어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산후 조리원을 나와 본가로 들어오고 나와 율이는 약 3주 정도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생이별을 해야 했다. 다시 만나게 될 3개월 동안 아내 혼자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싸워 나갔고, 율이는 아빠 없이 그 시간을 모두 감당해야 했다.

3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만난 율이는 처음 보다 더 무거워 졌고, 단단해 졌으며, 키는 더욱 자라 있었다. 율이를 안고 있으면 아빠의 냄새를 기억하려고 하는지 무의식적으로 나를 찾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고, 나는 그 착각 속에서 아들과의 유대를 그리며, 미안한 마음을 감추려 했다.

그러나 나와 율이의 관계 속에서 행복했던 순간은 그 때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의 상황을 비추어 보았을 때, 그 때가 제일 환상적인 호흡과 유대일지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와 두려움 그리고 내 안에 해결 되지 않는 일을 마주하고 있을 때, 율이는 비무장인 상태로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그러듯이 아빠와 독특하고, 깊은 신뢰와 폭넓은 유희를 즐기길 원한다. 그렇지만 아빠인 나의 상황은 조금 달라서 그런 순간에 매몰차게 거절하거나 혹은 금새 지친 내 자신을 발견하고, 율이는 돌아선다.

이제 5살인 아이가 “아빠! 용서해요.”하며 내게 다가와 그리도 “사랑한다.”라고 고백하는 그 말 앞에서 현실은 내가 더 율이 보다 아이가 아닐까?란 상심과 함께 한 영혼을 돌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율이에게 있어서 행복한 순간은 엄마와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5살이니까 기억하지 못할거라고 판단한 나의 어리석음을 아이는 지적한다. 어린이집을 가서도 엄마와 아빠와 함께 본 영화를 주저리 주저리 자랑하는 아이.

선물 보다는 그저 웃으며 자신을 바라봐 주길 원하는 소박한 아이.

이 아이를 위해 아빠로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에서 다시 고민하게 된다.

성경에는 실패한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담으로 시작해서,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 심지어 사무엘과 다윗 마저도 훌륭한 선지자 또는 족장 그리고 왕이였지만 그들은 자식 농사에서는 실패한 아버지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다시 나와 율이의 관계를 돌아보며 생각해 본다.

나는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좋은 아버지이고 싶은가?

나의 선택은 항상 좋은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이 밤에 나는 아들을 배운다. 아버지가 아닌 친구가 되기 위해서…

쉬운 일 따윈 없다!

세상에 태어나고, 자라며, 삶이란 이름으로 영위(塋爲)하려면 모든 부분에서 나름의 짧고, 길며, 깊고, 좁으며, 넓으면서 얇은 배움이 있어야 한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이며 또 다른 분야에서는 무지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누군나 전문가가 되고 싶으며, 박학다식한 존재로 남고 싶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부터 인생의 갈등이 시작된다.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그리고 좋은 아들이자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도 있고,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딸이자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아내와 좋은 아들이자 좋은 사람이 무엇인지 모르는 존재도 있다.

오늘 아들이 잠들기 전에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서 귀를 기울여 봤다.

“오늘 아빠를 용서해요. 율이가 생선 먹고 싶었는데 아빠가 화 내서 생선도 못 먹고, 혼나서 율이가 화가 났어요. 그래서 아빠 싫어 했어요. 그러니 아빠 용서해요.”

“헛”한 기분과 감정이 올라온다. 변명하고 싶고, 내 권리를 주장 하고 싶고, 너가 잘못한거야 소리치고 싶지만..

“용서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이런 오해와 상처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인생 너무 힘들다.

아이에게 골고루 먹이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고, 생선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음에도 밥은 안 먹고, 생선만 먹겠다는 아들을 다그친 것이 내가 용서 받아야 할 이유가 된 것이다.

어렵다. 불편하다. 그러나 그 또한 배움이라 생각하니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

아들과 화해 후 노래 부르며, 기도하고, 잠자리에 든다.

깊은 호흡과 함께 잠든 아이를 보며, 못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

자식 농사가 제일 힘든 농사라고 했던가? 어찌 보면 자식 농사라기 보다는 내가 성장하는 일이 가장 힘든 일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살아온 결과가 아닌가 싶다.

내일은 아들과 함께 영화 한편 볼까 한다.

벌써 부터 소리 지르며 좋아하는 아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아빠랑 놀러 갈까?”란 물음에 아들은 “네!!!! 행복해요!!!”를 외친다.

그래… 내 기준이 너무 높았나 보다. 고작 5살인 아이에게 20대 어른의 모습으로 행동하길 바란거다.

아들의 용서로 오늘은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겠다. 그래도 인생에서 쉬운 일 따윈 없다! 부모도 자식도….

권율
권율

권율 아기 학교 동영상

2014년 여름.
아내와 나에게는 독특한 철학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남의 손에 아이를 키우지 말자!였다.
물론 아내와 나 둘다 한계를 느끼기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필요한 존재는 부모라는 사실이었다.

작년 여름에는 특별히 집에만 있으면 심심해 할 것 같아서 율이에게 특별한 시간을 선물하기 위해 아내와 나는 이 교회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했고, 덕분에 율이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어린이 집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린이 집에 위탁하는 것이 더 쉬운 방법이기도 했다.

그래도 적어도 율이가 완전히 대화가 가능하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어느 정도 표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우리가 같이 있어주기로 결정 했고, 그렇게 함께 보낸 4년이기도 했다.

이제 율이는 어린이 집에 가고, 다녀와서 우리에게 무엇을 했는지 노래와 춤 때로는 알 수 없는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가끔은 율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어린이 집에 보내지 않으면, 율이는 벌써 친구가 보고 싶다며 ‘내일은 꼭 가고 싶다.”고 말한다. 벌써 부모의 곁을 떠나기 위해 연습하는 것일까? 아내와 나는 아주 짧은 찰라의 순간에 섭섭함을 느끼면서 하루 하루 성장하는 율이가 고맙기만 하다.

다른 아이들처럼 장난감을 사 달라고 마트에 눕지 않고, 엄마가 해주는 간식과 밥 그리고 된장국을 좋아라 하는 아들.

고맙고 사랑한다. 너는 하나님이 아빠에게 보낸 선물이야.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