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그 알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시작은 언제나 나이와 사회적 지위를 기준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그 단순한 시작은 시간이라는 먹이는 먹고 성장하여 끝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존재를 만들어낸다.
형, 누나, 동생, 선배, 후배, 직상 선후배, 타부서의 동료 그리고 기타 등등
다양한 관계를 생성된 후에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실로 연결되어 살아간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3명의 늙은 노파 중의 한명이 인생이라는 실을 끊을 수 있는 가위를 들고 있는 것 처럼 지금 나의 머릿속에는 내 능력으로는 끊어버릴 수 없을 것 같은 이 질긴 실타래를 어떻게 할 것인가로 가득하기만 하다.
삶에 대한 아니 생활에 대한 안정이 여기에 있기에 고민이 크기만 하다.
끊어내 버리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이 내 안에 있고, 나 스스로 고립될 것 같아 무섭다.
그 감정과 더불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을 내 몸에 칭칭 감고, 점점 빠르게 제로를 향하는 시간이 나를 위축되게 한다.
아침 부터 아내와 함께 울며 기도해 본다. 괜찮아질거다. 그렇게 나의 생각을 바꾸며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도 이렇게 글을 남긴다.

긴 하루의 시작

정말 잘 잤다는 느낌이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정말 푹 잘잤다고 생각했다.

오전 3:35.
머리가 맑아지고, 온 몸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왜 그런지 나는 내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 뿐이다.
이제 나도 불혹의 나이로 진입했다. 하루 하루가 다르게 느껴지는 때라 그러더라.

체력은 떨어지고, 사리 판단은 더더욱 힘들어지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내 나이 20대의 고민이 40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은 그냥 생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아들이 커가고 있다. 어제는 하나남은 유치 앞니를 빼고, 해맑고 웃고 있었다. 이 녀석의 영구치가 나오면, 성장할 것이고 그리고 나는 내 영구치가 빠질 일만 남았다. 그래 그 녀석의 청춘이 나의 노년이 될 것이라고 입 버릇처럼 떠들었는데 현실은 나의 행복감과 바꾸어 버린 성장의 일부분이 되었다.

벌써 6시 7분이 지나고 있다.

오늘은 송도에 양재까지…

하루의 일정이 꽉 차있다.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뒤돌아 볼 여유도, 주위를 돌아볼 마음의 시간도 모자란 때이다.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배웠다. 새로운 문이 열렸으면 그 문 너머의 무언가가 있을지 호기심을 가져봐야 한다고 배웠다.
그 배움이 강요가 아니길 원하고, 나아가 그 호기심이 나의 발목을 잡을 장애물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결국 넘어야할 장애물이라면 기꺼이 넘어 가겠지만 그 장애물 자체가 벽이가 되어 내 앞을 막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앞으로 해야할 일들은 반납할 장비 목록과 새로운 버전의 OS 테스트와 학생들을 위한 OS 설치 뿐이다.

무의미한 날들.

나의 짧은 인생에서 나는 만져보지도 가져 보지도 못했던 어마어마한 천문학적인 금액의 이익과 매출 달성이 거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싫다고 했고, 하고 싶지 않다고 했으며, 강하고 불쾌한 감정을 쏟아내며 부정을 해 보았지만…

오롯이 내 일이 되어 돌아온 그것의 결과가 확정이란 이름의 결과만 남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 돌아온 문자 한줄

“수고했어요.”

그 어떠한 수식이나 내용도 없이 그저 딱 저 문장으로 끝났다.

수없이 많은 날들을 고민했고, 테스트 했으며, 관련 문서를 뒤지고 또 뒤져서 나온 그 결과에 대한 평가가 저 한줄로 끝났다.

허무하다.

어떤 이는 그 모들 날들이 좋았다고 했는데…

나에게는 그 모든 날들이 무의미한 과거가 되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다.

잠들지 못하는 그런 하루가 될 것 같다.

그렇게 그는 일하고 계셨다.

하루가 정말 길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생각들이
내 안에서 아니 나를 향해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말은 미안하다 였지만…
그 안에는 나를 향한 압박이었고 흔희 말하는 갑질의 또다른 표현이었다.

밤을 새웠다.
잠을 잘 수 없었고
하기 싫은 마음과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그리고 압박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해냈다.

그러나 하나의 실수가 나의 성과를 무너뜨리는 원인이 되었고,

오히려 이 일을 주도한 그의 성과가 되었다.

넘어가기로 했다.
무시히기로 했고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상처 받았다.

잠들지 못한 시간에 대한 보상은 없었고
다음 날에도 나는 내 일이 아닌 것에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런 비참함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아니 견딘다는 표현 보다는 무감각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 있다. 내 두 발로 내가 견뎌낼 수 있는 힘 만큼 나는 버티고 서 있다.

중요한 것은 서 있는 것이다.

버티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고개를 떨굴 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원망과 분노가 한 숨이 되어 내뱉어질 때..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나는 그분이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심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그는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

비 오는 날 머리에 꽃을 꽂고

그렇게 걸어다니며 내 안에 있는 광적으로 들끓어 오르는 감정을 모두 버리고 싶었다.

마치 투명한 유리병에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차 있던 것이 흔들리는 감정과 함께 구정물이 되었다가 그 요동치던 감정이 사그라지면 유리병 아래에 가라앉아 다음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일보다 관계가 중요한 사람이다. 일에 높고 낮음은 책임지는 위치가 다른 것이라 배웠고 나 또한 내 아래의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그렇게 책임지는 선배로 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었다.

나를 흔드는건 결국 내가 아니라 외부의 자극이었다.

이 투명한 유리를 자극하는 요소는 일을 핑계로 마치 하청 업체의 판견직을 대하는 동료의 행동이며 조금 높은 직책을 무기로 모든 업무를 전가하는 무책임한 상사들의 폭력이 주요 요인이다.

일에 대한 협의는 그 일의 주체가 누구인지 구분짓는 것이며 그 일을 책임지고 할 수 있는 부서나 사람에게 적절히 배분하기 위한 것인데…. 이놈의 조직은 “그냥 해!”가 더 많다.

부장이라 이사라 상무라.. 그렇다고 한다.

부장은 부장이라 안 하고, 이사는 이사라 안 한다. 상무 새끼는 부하 직원 관리는 자신의 직물하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근데 이 셋이 이미 망한 회사에서 부장으로 차장으로 과장으로 근무하던 놈들이다.

나름 자신들이 아주 큰 회사의 중요 직책을 감당했기 때문에 이런 일은 아주 잘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이사가 마우스를 납품하기 위해 고객을 찾아가는 삼류 영업 집단이다.

그래도 영업력 하나는 탁월한데 이 말은 얼굴에 철판이 두꺼워서 창피와 수치심을 모르기 때문이지 그 감정을 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그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먹고 싶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건드린다는 것 자체가 싫어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변화에 목이 마르다.

내 내면의 속사람이 원하고 있고, 겉사람 또한 그것을 정말 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다만 일과는 별개로 아침에 일찍 눈을 뜨지만 그냥 누워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즉 흥미를 잃었다는 것이다.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고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자원하는 마음이 참 큰 사람이다. 내가 자원해서 하겠다는 일에 대해서 소홀히 여겨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마음이 마치 활활 타오르던 숯불이에 어마어마한 양의 차가운 물을 한번에 뿌려서 그 불씨를 꺼버린 것과 같은 상태이다.

살아가야 한다.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다. 일을 쉬면 전기료 부터 아이의 교육비까지 모든 것이 빚이 되고 짐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 현실 너머 내 이상을 찾아가는 것이 내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I am still alive.

게으름과 나태한 나를 사랑하는 법

의지력 부족은 언제나 결핌과 게으름 그리고 나태한 자아에 대한 실망스러운 결과를 직면하게 한다.
아닐거라고 나는 아니라고 부정해 보지만 이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서로 얽히고 뒤틀려진 상태로 존재하며 압박하고 조르며 지치게 한다.

결론은 나의 문제라고 한다. 처음 무지한 상태에서 나는 주변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들이 옳고 나는 틀리다며 검증도 하지 않고 맹신하고 했다.
한해 그리고 또 한해를 보내며 그들의 말들이 다 옳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야 나는 비로서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리고 내가 그렇게 무지를 선택하며 살아가 이유가 없음을 발견한다.

그 발견이 내게 유익한 건 그것 때문에 나는 다른 이들의 시선에 기대지 않고, 올곧게 나를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래도 완전하지 않은건 그 배움이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나는 또 다른 일에 대한 집중을 포기해야만 했다.

나는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까? 40대 중반에 성장을 바란다는 것이 욕심일까? 아니면 허무한 꿈을 쫓는 어리석은 행동일까?

무언가를 간절히 바란다는 점에서 나는 아직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그리고 행동이 결국은 나란 사람을 성장이란 궤도 위에서 온 우주를 달리는 은하철도 999라 믿도록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게을러져도 괜찮다고 조금 나태한 모습을 보여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괜찮다. 괜찮다. 나는 괜찮다. 그렇게 말이다.

2020년 1월의 첫 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무엇 하나 버릴 것도 그렇다고 간직할 이유도 없는 삶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내 삶을 두루 감싸고 있었다.

그렇게 지나가 버린 2019년이었다.

정말 치열한 1년을 보냈다. 단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영역에서 그렇게 처음 걸음을 배우는 아이처럼 나는 내딛어야만 했다.

다행히 그 분은 나의 곁에서 나의 걸음을 기억하고 계셨고, 내가 앞으로 나아갈 때 마다 혹은 넘어질 때 마다 나 보다 앞서서 때로는 뒤에서 나를 붙잡아 주셨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였다. 그럼에도 나는 성장할 수 있었고, 그 성장이란 신체적 혹은 정서적 영역 안에 나는 오로지 권순길이라는 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아직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이다. 고작 100살 기준으로 아직 절반에도 못 미치는 인생이고, 누군가의 아들로 또는 남편으로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삶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오늘도 이른 새벽 부터 씻고, 출근길을 나설 뿐이다.

2020년 첫 글 부터 뭔 연민이나 아쉬움 또는 후회가 많은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시작이다.

벌써 15일이 지났지만 3개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궤도에 올랐다.

그래… 이게 다 그 분 덕분이다.
그렇게 나는 감사한 인생.. 그러니까 존재 자체가 그 분 안에서만 설명되어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고맙습니다.

선택과 집중

간 밤의 꿈 속에서 내가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결과를 미리보기로 볼 수 있었다.
그 일은 마치 지금 현실에서 내가 고민하던 것을 반영하듯이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모습으로 찾아왔다.

결론이 내려진 일에 대해서 태도와 생각을 고치기는 너무 어렵다. 그러나 아직 그 일에 대해서 어떠한 결론이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언제든지 태도와 생각 그리고 다양한 토의와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다.

대부분은 결론을 내린 사람이 일방적으로 자신과 다른 결론을 가진 사람에 대하여 그의 태도와 생각을 바꾸기를 원하거나 강요하기 쉽상이고,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관계에 대한 신뢰는 깨지고, 지시와 강요, 의지와 상관없는 일장적인 선택만 존재할 뿐이다.

요즘 내 삶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도출된 결과를 가지고 논의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나 나의 직임이 나의 신분으로 작용하여 나보다 낮은 직임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갈등은 결국 있는 그대로의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의 부재인것 같다. 그렇게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고, 그렇게 그 틀 안에서만 그 사람을 보려 한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관망하는 자세로 불필요한 감정 대립을 멈추고, 사실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것이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인가?

복잡하고, 다양한 걸 좋아하지 않는 내게 너무 많은 선택이 내 주위를 멤돌고 있다.

첫째는 내가 원해서 선택했기 보다는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고,

두번째는 내가 선택해서 하고 싶고, 원하는 것이었다.

세번째는 내 주변에 나를 아끼는 이들이 내게 권하는 것들이다.

나는 잘 모르겠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나는 참 행복한 놈이라고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나는 이것이 행복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결정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수용하고, 납득하며,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결과에 똑같이 잘 할 수 없고, 선택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지금의 나는 너무 무기력하다.

1번은 상황 때문에 결정한 부분이니 상황이 해제되면 괜찮을까? 아니다. 귀찮은 일 뿐이다. 내 일이란 명목 아래 주어진 이용 가능한 목적일 뿐이다.

2번은 어떠한가? 아직 결정나지 않았다. 이번 주간이 검토 주간이니 아직 결정 난 것이 하나도 없다.

3번은 벌써 두 곳에서 연락이 왔다. 둘 다 모두 내가 형님을 모시는 분들이고, 그 중 하나는 이미 같이 일을 해 보았던 곳이다. 그곳의 나의 매니저는 나보다 2살이나 어리다고 한다. 그러나 직급은 부장. 나는 어떤 직급일까? FAE라고 하니… 일의 특성상 여기저기 불려다닐 것이 뻔하고 아… 귀찮다.

다른 한 곳은 순수 엔지니어. 어찌 보면 나랑 제일 잘 맞는 곳이 아닐까 싶지만 여기도 아직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의 문제를 다루는 곳이다.

지친다. 어떤 것이 제일 좋은 것일까? 돈만 보고 결정해야 하나? 앞으로 얼마나 더 일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시동 보안 유틸리티에 관하여

MacBook Pro 13-inch Retina with Touch Bar(2018)

macOS High Sierra 10.13.6

한적한 연휴가 될 줄 알았는데… 지인의 부탁에 이것 저것 테스트를 해 보았다. 사용자는 2018년 신형 맥북 프로에서 Disk Utility로 이미지를 생성하고, 복제하여 다른  Mac에 똑같은 시스템을 구성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문제는 신형 제품에서 macOS High Sierra 10.13.6 USB Installer를 사용하는데 인터넷 복구 모드와 같이 지구본 마크와 함께 USB로 정상적인 부팅이 불가했다.

그러다 찾아보니 신형 장비에 이런 기능을 탑재되었더라. Apple T1  보안 칩셋.

이미지는  https://support.apple.com/ko-kr/HT208198에서 가져 왔습니다.

보안 시동에서 [보안 없음]을 체크하고, 외부 시동에서는 [외부 미디어에서 시동 허용]을 체크해야만 USB Installer가 정상으로 작동하더라. 한가지 번거로운 건 신형 장비 모두 ThunderBolt 3만 지원해서 USB를 연결하려고 해도 아답터나 ThunderBolt 3 확장 베이가 필요하다는 걸… (귀찮아~)

아무튼 일단 USB installer로 부팅은 성공했다. APFS 포맷에서 이미지 생성과 복원 은 다음 포스트에 남깁니다.

고민.

넘어가는 해는 관심없고 오로지 손끝에 느껴지는 모래 놀이에 집중한 아이.

그 모습에 어찌보면 삶에 대한 고민이나 문제에 대한 태도를 저렇게 넘겨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러가지 고민 중에 가장 큰 고민은 사실 “돈”에 대한 고민이고 문제이겠지만 그건 “돈”만 있으면 해결되는 것이니 논외로 제껴 놓는다.

요즘 내가 느끼는 고민은 “관계”이다. 영화 대사로 자주 등장하는 것 처럼 “배려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는 말처럼… 관계 안에서의 문제는 항상 배려 받는자가 아니라 배려 하는 자의 고통이 된다.

장모님을 모시는 것이 내게 그런 일이 되었다. 처음에도 배려를 요청하더니 배려를 했을 뿐인데… 요구가 늘어난다. 결국 호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장모님이 혼자 계시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에 결정했다. 그 결정이 옳은 것이든 잘못된 것이든 나는 그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태도에 대해 말하지 못한 것이 그리고 제대로 선을 긋지 못한 것이 후회되고 지금은 그 관계를 끊을 생각까지 하고 있는 나를 본다.

간 밤에 울분에 잠을 잘 수 없었다. 미안해 하는 아내는 둘째 누나가 자신에게 했던 말들 꺼내고.. 결굴 둘째들의 뼈를 찌르는 가시 같은 말들에 상처 받았을 뿐이다.

돌아갈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타임머신이든 뭐든 타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나는 이 삶이 싫다. 내가 선택한 삶이 아닌 것도 있겠지만 자신들의 삶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연로한 어른을 무기 삼는 그 행태가 보기 싫고, 자신들의 자식을 명분으로 삼아버린 그 생각이 꼴 보기 싫다.

어찌해야 할까? 어제 부터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는 나를 발견한다.

다 버리고 다 놓고 다 치우고 떠나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다. 내 생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에 나는 길 위에 서 있고 싶은 것이다.

아이의 미소가 날 웃게 한다. 아이의 기도가 날 살게 한다. 아이의 간절한 바램이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나는 오늘을 그렇게 살고 있다.

어울리지 않는 옷들…

살면서 몇번이나 비슷한 경우의 경험을 하다 보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러면서 발견하게 된 것 중의 하나와 나와는 어떠한 것도 맞지 않는 종류의 관계나 사람을 만나는 일인데 이런 사람을 참고 견디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배운다.

어떻게든 포용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이해나 납득이 되지 않는데 대부분은 상대방의 무례함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그저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상대방의 무례함에 대처하는 나의 태도가 문제가 되는데 이런 경우에 대부분 나란 사람은 일관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대화를 시도하거나 공통점 또는 포용의 태도를 보이지 않고 절대적인 공격성을 띈 방어적 행동이 나타난다. 물론 절대적인 공격성을 띈 방어적 행동이란 모순되는 언어적 표현이라 하더라도 할 수 있다면 방패를 들고서 상대방을 죽일 수 있을 만큼의 증오가 담겨져 있는 표현이라 하겠다.

지친다. 1초도 함께 있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벌써 3일을 같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기에 이곳은 지옥과 같다고 느껴진다.

이번 출장은 너무 힘들다. 다시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간절할 정도로 말이다.

[스팸 주의 관련] 아! 랜섬웨어.

뭐 그런 저런 날이다. 하루가 길고 어쩔 수 없이 이것 저것 찾아보고, 정리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

블로그를 작성하다 보면 고민거리가 하나, 둘씩 늘어나는 것 같았던 그런 때였다.

그런 날에 김진연 작가님이 메일을 주셨다. 어우 황송해라. 저작권 관련 메일이길래 내가 작성한 포스트 중에 저작권을 침해한 것들이 있었나 긴가 민가(?)

고개를 갸우뚱 할 때 즈음에 첨부된 파일의 압축을 풀었고, 그 안에 랜섬웨어가 있었다.

카톡으로 중요한 업무를 처리하는 중에 갑자기 나의 MacBook Pro Retina가 엄청난 발열과 굉음과 같은 Pan 소리를 내며 돌기 시작했고…

바탕화면의 몇몇 파일과 이미지들이 보지 못한 파일명으로 바뀌고 있었다. 뭔가 문제가 있나 싶어 재시동했더니 주로 사용하던 계정에서 로그아웃 되고, 이내 몇몇 파일의 접근이 아예 불가가 되었다.

하필 이런 때에….

뭐 별 수 있나? 돈을 줄 생각은 없으니…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하고 나는 모든 것을 format 해 버렸다. Time Capsule에 있는 백업만 믿고…..

ㅋㅋㅋㅋㅋㅋㅋ 망할 Time Machine 같으니….

무려 7~8 차례나 복구를 시도했으니 약 87%에서 항상 복구를 완료 할 수 없다는 안내와 재시동을 반복하였고, 당장 저녁에는 비행기를 탑승해야 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수동으로 파일 하나 하나를 대조하며 업데이트 하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고 일어나니 내 아이폰 8+의 Touch ID가 깨져 있었고, 내 과실도 아닌데 내 과실로 보험 처리를 했으며, 액정만 교환하는 줄 알았더니 결국 리퍼폰이 돌아왔다. ㅠㅠ

이유는 모르겠고, 설명을 못한다고 하고, 자고 일어나니 깨져있고…. 이런 황당한 일들을 24시간 안에 동시다발로 일어나다 보니… 멘탈은 흔들리고….. 뭐 그런 날이다.

랜섬웨어 스팸 메일 이미지

혹시 이런 메일을 스팸 메일에서 발견하셨다면 첨부파일은 열지 말고 그냥 지우세요.

macOS를 사용하신다면 RansomeWhere라는 무료 app를 설치하세요.

RansomeWhere
RansomeWhere

mysql error : ERROR 1018 (HY000): Can’t read dir of ‘.’ (errno: 13) Ask

WordPress + MySQL을 사용하다 다른 응용프로그램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려고 권한을 변경하면… 위의 제목과 같은 문제들이 나타난다.

처음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때에는 작동하던 때로 백업을 이용해서 복구했었는데 알고 보니 간단하게 권한만 복구해 주면 되는 것이다. 어떤 블로그에서는 워드프레스에서 복구 기능을 사용하라고 나왔는데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고 그렇게 찾아낸 방법이 아래와 같다.

다른 OS 버전은 모르겠고… macOS X에서는 이렇게 입력하면 된다.

sudo chown -R mysql:mysql /usr/local/mysql/

sudo chmod -R 755 /usr/local/mysql/

아.. 복구했다. 하필이면.. 선배 회사 서버였네. x 될뻔 했다. ㅋㅋㅋ

 

 

APFS Format에서 Disk Utility를 이용한 이미지 생성 및 복원 방법 10.14.6 에서는 불가

아래의 방법은 macOS 10.14.6 Mojave에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

AFPS의 포맷 때문인지 macOS의 순수성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수는 없지는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다만 현재 10.15.x Catlina에서는 가능합니다.

가능하다는 방법만 남겨 놓습니다. 진짜로 진행되는지는 여유 장비를 이용해서 직접 테스트 해 보시길 권합니다.

방법은 분명 있습니다.

2020년 4월 7일 업데이트

어쩌다 이걸 테스트하게 된 건지는 뭐… 설은 이렇다.

선배 전화: 도와줘!
나 : 뭘요?
선배: macOS 에서 이미지 뜨고 복원하는 거…
나 : 네!
장비 필요 없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뭐 그렇게 된거다. 알고 보니 선배가 쓸건 아니고였고 선배의 거래처인 Kaxxx x크에서 예전 HFS+에서 이 기능으로 잘 사용했는데 APFS에서는 이상하게 에러가 난다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더라. 왜냐고? 두 개의 포맷 모두 한배에서 나왔지만 서로 다른 자식이니까.
APFS는 Flash 기반의 스토리지를 위한 포맷이라고 키노트에서 봤던 기억이 있고….
그럼 정리를 시작해 봅시다.

*준비물
원본 이미지 생성을 위한 외장 하드드라이브 x1
복구에 사용될 외장 하드 드라이브 x1
macOS High Sierra USB 부팅용 디스크 x1
macOS가 설치된 Apple Computer x1

가. 디스크 이미지 생성
1. 디스크 이미지 생성을 위한 SSD 또는 HDD mount

  1. 상단의 파일 -> 새로운 이미지 -> 폴더에서 이미지 선택 (아래의 이미지 참조)
  2. 이미지 생성을 위한 경로 설정 (원본 이미지)
  3. 이미지 저장 경로 설정 (외장 하드)
  4. 이미지 포맷은 읽기 전용으로 변경 (기본 옵션은 “압축”으로 되어있음)
  5. 이미지 생성 완료.
나. 디스크 이미지 복원
1. 복구하기 위한 외장 하드 또는 시스템 저장 장치 연결(포맷은 반드시 APFS 포맷할 것)
선택은 볼륨(무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컨테이너 disk9을 선택한다.
  1. 컨테이너 disk9 click -> 복원
  2. 저장된 이미지 경로 설정
  3. 이미지 복원 진행
  4. 이미지 복원 완료
  5. 이미지 복원이 완료되면 좌측 디스크 목록처럼 이름이 똑같은 볼륨이 생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음
  6. 정상적으로 이미지가 복원되면 시동디스크에서 부팅할 수 있는 장치 목록이 나타남.

외국 포럼을 보니 이 기능을 사용하지 못해서 올라온 글들이 많더라. 뭐 방식의 차이라 생각하고 테스트 해 보니 잘 된다.
그럼 여기서 더 간단하게 복원 하는 Tip을 적어 본다. 사실 이미지를 만들 필요도 없이 예전 구형 컴퓨터의 HDD Copy라고 생각하면 쉽다.

단 반드시 USB 부팅 디스크의 디스크 유틸리티에서 작업하거나 또는 별도의 외장 하드에 설치된 macOS에서 작업하길 권한다. 왜냐하면 오리지날 이미지는 대부분이 맥의 내장 볼륨을 다른 컴퓨터에 덮어씌우는 방식이기 때문에 2번 일하기 보다는 한번에 간단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다.

*초간단 복원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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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4

살아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이야기하시는 어른들을 만났다.

그 ‘살아보니’라는 단어 안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던지… 사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지고 있는 짐의 무게나 타인의 무게를 비교한 적 없고, 나로 인해 누군가가 불행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남에게 관대하고 나에게는 박대했다.

지금 나는 행복한가? 물질에 국한되지 않는 전제 안에 나는 행복하다. 다만 물질, 곧 돈이 이 범주 안에 들어간다면…

글쎄 그건 장담할 수 없다.

약 5~6km를 걸으며 나란 존재가 홀로 중얼거리는 마음 속의 외침은 아직은 더 잘 살고 싶다고 하나님을 향해 간곡하게 외치는 것 뿐이다. 이것 외에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600통이 넘는 이력서와 여기 저기 내가 아닌 남이 벌려 놓은 일들을 수습할 뿐..

그렇게 오늘이 간다.

나는 오늘 그런 하루를 보냈다.

20180305

간밤의 꿈을 잃어버린 나는 방황하듯 홀로 울부짖는 늑대가 되었다.

현실이 부여한 어깨의 걱정과 근심 그리고 내 배 주위로 둘러싼 염려는 결코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멈추고 싶다.

이 시계를 멈추고 싶다.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멈추지 않는 수없이 많이 조각난 짧은 찰나의 순간 모두를 부숴버리고 나는 다시 기나긴 꿈속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그러나 멈춰지지 않는다.

아주 잠깐이라도 나의 의지와 바램과 소망이라 불리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마법 같은 순간이 찾아오길 바라보지만 여전히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여전히 그 ?몽념에 갇혀 있는 것이다.

도망가고 싶다.

멈추고 싶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내게도 타인에게 넘겨준 배려와 용서 그리고 긍휼의 시선을 베푸는 손길이 필요하다는 사실 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나를 향한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일까?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부족한 것들 뿐이어서 나는 이 고통의 수레를 벗어나지 않는 것일까?

하나님의 인자하신 손길과 그분의 긍휼을 기다린 지 벌써 몇 해가 지났는지 모른다.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을 하루하루 채워가지만 내가 기대하는 것과 그분의 바램은 너무나 다른 것으로만 보인다.

나는 확실히 갈 길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그 자리에 멈춰서 은혜를 구걸하는 거지가 되어야 할지 선택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나를 둘러싼 이 두려움의 저주를 비껴갈 방법을 모르겠다.

그저 눈물로 내 안에 새겨진 저주의 상처들을 하나하나 닦아 내려갈 뿐이다. 내게 주어진 이 상황과 상처들을 모두 끌어안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인가 보다.

밤은 깊어가고 낮이 밝아 오려 한다. 다시 오지 않는 오늘이지만 지금의 나는 오늘에 대한 기대보다 오늘을 살아낼 방법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나는 살아있으면 싶다. 호흡하는 인간으로…. 그리고 시간 속으로….

20180211

눈을 뜨는 것이 무섭기만 하다.

아침은 새로운 시작이 되지 않고, 두려움의 시작이 된 지 한참은 된 것 같다.

여전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 반복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아침의 새로움이 시작이기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나 보다.

찌뿌둥한 몸을 움직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같은 시간에 일어나 일정한 형태로 반복하는 행동이나 일들을 본다.

먼저는 비타민을 마시는 것이며, 둘째는 따뜻한 차를 그러고도 잠이 깨지 않으면 진한 커피나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것이다.

잠이 덜 깬 나의 정신과는 반대로 아내와 아이는 분주하기만 하다.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기 위해 아내는 식사와 옷 그리고 가방과 필요한 것을 챙기고, 아내도 운동을 위해 여벌 옷과 수업을 위해 필요한 것을 주섬주섬 가방에 넣는다.

이 아침에 홀로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일상을 경험하는 사람이 바로 나란 존재다. 내 시간은 멈춰있다. 그것도 거의 일정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다 공복이 주는 신호 때문에 밥솥을 뒤지다 보면 어느덧 점심시간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이때부터 부족한 시간과 정서적 불안감 그리고 스스로 부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이리저리 바빠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잠깐 한숨을 돌리려 하면 아이와 아내가 돌아올 시간이다. 그리고 나의 시간 아니 그러니까 나의 일상은 거기서 멈춰버린다.

무의미하다는 것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일상이 이런 것일까?

알 수 없다. 아둘람 동굴에서 다윗도 그런 기분으로 머물렀을까? 주위에는 온통 도둑과 강도 그리고 나름대로 상처와 울분을 품은 이들을 곁에 두고 그도 이런 일상을 맞이했을까? 그저 몇 장으로 이루어진 책에는 다 나와 있지 않지만, 그 두려움을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다. 그 동굴에서 그는 무슨 꿈을 꿨을까? 어떻게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고, 그 용기를 어떤 방법으로 도둑과 강도들을 설득했을까?

과정은 잘 모르겠지만 결과를 보자면 그는 그 안에서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방법을 배웠고, 그의 능력과 실력이 되어 도둑과 강도 그리고 상처가 가득한 사람들을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데 가장 필요한 인물들로 바꾸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 되었다.

지금 내가 그 소망을 내 맘에 품고 기다리고 있다.

2018.1.30.

참을 수 없는 고통을 함께 나누며 각자의 위치에 자신의 해야 할 것을 바르게 알며, 올곧게 그 길 위에 서 있을 수 있는 관계가 있을까?

남편과 시아버지는 죽고, 이제 남은 것은 시어머니와 형님뿐인 상황에 놓은 이방 여인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한때 그녀와 남편과 시부모는 굉장히 부유한 집안의 사람이었다.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그녀의 동네로 이사를 왔고, 그녀는 두 형제 중의 막내에게 시집을 갔다.

단란하게 가족을 꾸리고 행복을 느꼈던 것도 잠시, 순식간에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 단호한 슬픔이 되어 그녀의 삶 전체를 뒤바꿔 버렸다.

시아버지를 시작으로 남편과 그의 형의 죽음을 지켜 보았고,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을 포함한 여인 셋.

그렇게 그녀들의 슬픔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어느 날 시어머니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며느리들을 앉혀 놓고, 각자의 갈 길을 가라고 권하고 있었다.

큰 형님은 자신의 길을 가기로 선택하고, 그녀 홀로 시어머니 옆에서 살며 시어머니를 따르기로 한다.

어찌 된 일인지 고향으로 돌아온 시어머니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은 하나 없었다. 소망은 그렇게 소망이란 이름으로 불릴 뿐 다른 이유나 목적 그리고 주린 배를 채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은 추수가 끝난 넓은 들판에 나아가 떨어진 이삭을 주어다가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것이 전부.

그러나 그녀는 이방인이라는 차별의 멍에를 두르고 들판에 나아가 홀로 이삭을 주우며 생활한다.

대부분의 삶이 이렇게 끝이 나지 않던가? 그리고 시어머니와 행복했다. 배부르게 먹고 즐겁게 살았다. 이런 문장이 마지막에 남으면 한 여인의 인생도 그녀와 함께 했던 시어머니의 인생도 끝이 나고 만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어머니의 먼 친척 중에 부유한 사람이 있었고,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던 그는 그녀를 위해 사람을 시켜 들판에 많은 이삭을 일부러 떨어뜨려 놓기도 하고, 그녀에게 음식과 물을 주며 빡빡한 인생에 잠시나마 쉼을 주기도 한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와 시어머니에게 오늘 일어난 일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 시어머니는 몇 가지를 지시하고 며느리인 그녀는 그 지시 사항을 따르며 지켜낸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 출가하는 그녀. 그리고 그녀의 삶 전체를 멍에로 이끌고 있던 이방인에서 이제 그녀는 한 남자의 당당한 아내로 그리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문의 기록된 여인으로 그 이름이 존재하게 된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굿룻”이란 여인의 이야기이다.

아침부터 깨어진 관계와 인생을 묵상하는데 내게 보인 의미가 바로 그녀의 삶 자체였다. 쉬운 삶은 없으며, 100% 만족이란 이름으로 꽉 채워진 인생도 없다.

그렇게 우리의 삶에는 잃어버린 부분도, 채워진 부분도 함께 존재하며 그 두 가지가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며 인생의 굴곡을 만들지 않던가?

나는 오늘 아침에도 이 글을 남기며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로 결정한다.

그 분이 아니면 내 인생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 분이기 때문에 내 삶의 어떠한 고난도 일방적인 폭력으로 기억으로 존재하지 않고, 나를 연단하기 위한 훈련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린다.

2018.1.29

얼마 전 부터 서버의 상태가 이상했다.

아니 사실 서버는 별 문제 없었다. 몇가지 해야 할 것들 때문에 이것저것 실험 중인데…

실수로  MySQL을 건드린 것이 화근이었다.

적어두었던 Root 계정의 암호는 당최 먹질 않고, 웹사이트에는 계속 접근 불가로 나오고…

그나마 타임머신으로 백업을 해 놓았던 것이 생각나 복원했더니.. 2017년 12월 28일이 마지막 백업이라 몇 개의 데이터는 살릴 수 없었다.

그걸 감사해야 한다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뭐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거의 없었는데 정상이었을 때 작동하지 않았던 PlugIn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걸 보면서 세상에 무조건 손해 볼 일은 없다는 걸 배웠다고나 할까…

태어났으니 죽는 것이고

시작했으니 끝이나야 하는 것이고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존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계라는 울타리 안에서 존재해야 하는 것이고…

불편하고, 불안하고, 두렵고, 걱정되고…

그렇지만 또 살아야 한다.

지금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오늘을 사는 것이다.